티스토리 뷰

“국민통합 하겠다. 진보 정책, 보수 정책 가리지 않고 쓰겠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 다양한 정치세력과 늘 소통하고 협치하겠다.” 이번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들이 쏟아낸 ‘국민통합’ 관련 말이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로 선거운동 과정은 비난 공방으로 얼룩졌으나 ‘국민통합’이라는 말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부터 선거운동을 마감하는 심야 연설장까지 후보들은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새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잘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후보들은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선거 프레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알 수 없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후보가 쓰는 모든 말은 선거용이겠으나 ‘국민통합’이라는 말은 특히 그랬다. 초기에 그 말은 ‘상대 후보는 편파적이고 협량하지만 자신은 포용적이며 도량이 넓다’는 생각의 틀을 주입하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국민통합’을 외치면서도 ‘국민분열’을 조장하는 상대 폄하에 주저하지 않았다.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기존의 사회적 균열을 과장하고 확대하면서 지지기반을 만드는 일이야 선거운동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부추기며 지지자를 동원해내는 언술은 정말 걱정이었다. 그래서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진정일까? 말처럼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선거운동 후반에 접어들면서 국민통합 담론은 중도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이고 경쟁상대를 고립시키려는 전술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재명과 윤석열이 안철수와 손잡기 위해 제시한 구애의 핵심 고리는 국민통합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안철수의 행보가 벌거벗은 권력정치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웠던 국민통합의 깃발은 빛이 바랬다. 안철수가 윤석열을 최종 선택하면서 두 사람이 국민통합을 약속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안철수를 놓쳐버린 이재명은 그와 상관없이 국민통합에 필요한 정치개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국민통합의 앞날은 불안하게 되었다.

국민통합의 미래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국민통합’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모든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외쳤다. 그러나 모든 대통령의 국민통합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승만은 반공, 승공을 내세우며 국민통합을 외쳤고 박정희는 부국강병을 위해 국민통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시기의 국민통합은 상징 조작과 국민계몽을 통한 권위주의적 동원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동원된 국민통합’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민통합 의제는 주요한 국정과제로 다루어졌다.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은 국민대통합연석회의라는 국무총리 소속의 국정협의기구를 만들어 노사갈등 해소를 포함한 폭넓은 분야의 과제를 다듬었다. 이명박은 사회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만들어 당면한 사회갈등 문제와 국가비전을 검토하였다. 박근혜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로 만들었다. 문재인은 국민통합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사회갈등 해소와 국민통합 의제를 다루는 다양한 기구를 두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도록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국민통합정책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기구 구성과 활동에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이 국민통합 정책의 추진 동력을 약화시켰다. 국민통합이 비판 세력을 흡수하려는 정치적 기획이 아닌가? 이런 막연한 경계심도 있어서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국민통합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통합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나? 이런 질문이 이어졌기 때문에 국민통합이란 정책의 목표, 대상, 사업 등이 명료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이 있다면, 국민통합이란 하나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민주적으로 공존하는 상태로 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국민통합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갈등 해소의 제도화가 국민통합에 중요하다. 그리고 다양한 가치, 이익을 반영하고 수렴할 수 있는 정치적 대표체제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국회, 선거, 정당 등 정치개혁이 절실한 이유이다. 모든 정부가 높이 내걸었으나 어느 정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국민통합’이란 과제를 새 정부는 성공하길 바란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정동칼럼]최신 글 더 보기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