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리란 결국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면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성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정부다. 정부의 최고 통수권자는 대통령이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기후위기 앞에서 자본주의 자체가 대전환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정치는, 특히 작금의 선거 과정은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열망과 역할의 엄중함에 비해 낙후해 보인다. 왜 유권자가 후보를 걱정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 형편인지 여기서까지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왜 이렇게밖에는 안 되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어느 조직이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정당이든 사람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통상 글로벌 대기업에서는 Succession Plan 즉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두고 채용 이후 성과 검증을 통해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육성하고 있다. 조직에 있으면 누구나 역량의 유효기간이 있다. 내 부하가 내가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내 역량은 시효가 끝난 것이다. 상사는 부하를 키우면서 스스로 더 올라갈 수 있는 역량을 또 키워야 하는 게 도전 과제다. 이런 승계 과정의 선순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이미지만 있고 역량은 알 수 없었던 지도자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정당이 지속 가능 관점에서 다음을 생각하고 사람을 길러낼 시스템을 갖지 못한다면 그런 조직에는 미래가 없다. 이런 선거에서 이긴다 한들 누가 승자라고 할까!
어떤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반드시 선행 요인이 있다. IT 강국이 되기 전에 전자공학과의 입시 커트라인이 의과대학보다 높던 시절이 있었고 천재들이 영화판으로 몰려들면서 아카데미상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재들이 몰리는 곳에 성취가 있었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그토록 중요한 정치에 왜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들지 않는 것일까. 아니 왜 우리나라 정치는 귤을 심으면 탱자만 열리는 걸까.
오늘 하루만 지나면 새해다. 멸종위기종 호랑이 기세로 부디 이 난장을 다스려줄 승자를 기다려본다.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