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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명언 중 하나가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이다. 참 멋있는 말이다. 하지만, 얼떨결에 내뱉은 ‘책임지겠다’란 한마디는 숨겨진 한 줄의 규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오면 죽음과 비슷한 무게를 지니는 무서운 단어다.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때 ‘책임’이란 단어가 가진 무게를 짊어진 자의 모습은 멋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이슈에 대하여 ‘책임’을 온몸으로 짊어진 자를 본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나의 이런 기억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힘없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힘 있는 자에게는 가볍게 처벌하는 것을 많이 보아온 게 원인일 것이다.
책임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한 의무나 부담’ 등이다. 책임은 법적·정치적·도의적·업무적 책임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업무적 책임을 법적 책임으로 확대하거나, 정치적 책임을 단순한 업무적인 책임으로 한정하여 물을 때 책임을 묻는 행위의 정당성은 실종된다. 따라서 책임을 물을 때 정확한 관점과 무게에 맞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일은 여전히 시행착오 중이며,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혈세가 지원된 사립대학의 일부 재정에 대한 감시를 위해 시작된 교육부의 사립대학 종합감사는 명분이 타당하다. 감사의 결과로 발표된 일부 비리 행위에 대하여 구성원들은 깊이 반성하며, 바로잡는 시간 또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으로서 감사를 받았던 지난 시간은 교육부의 목적이 무엇인지 매우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개인정보 남용을 통한 권한 밖의 영역에 대한 먼지털기와 권위적인 감사로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는 기관의 거의 모든 활동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사학의 공공성을 위한 감사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한 그 결과로 발표된 내용은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 정당한 책임을 묻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으로 포장되었다.
감사가 지나간 거리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가 유일한 행동 규칙으로 남았다. 오직 규정과 법령에 근거한 기계적인 통제를 경험한 구성원들은 생존본능에 의해 “안 됩니다” “규정에 없습니다”란 말로 모든 의사결정에서 권리와 유연성을 버리고 규정 속에 자신을 숨기고자 한다. 책임질 수 있는 뭔가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지식 생산의 첨병에 있는 구성원들이 행하는 모든 일과 생각에서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 교육부의 감사는 대학에서 ‘책임’이란 단어의 무거움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도리어 ‘책임’이란 단어를 실종시켜 그 자리에는 무사안일주의가 만든 각종 규정과 절차만 넘쳐나고 있다.
책임에 엄격한 사람들의 특징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 일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책임질 생각이 없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자들에 의해서 대학이 감사받고 있다. 문구와 숫자에만 집착하여 이루어졌던 감사 결과에 정당성이 의심되는 판단이 나오고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 진짜 문제를 찾아내는 감사가 아닌, 언론에 한 줄 더 나오기를 기대하는 감사는 대학을 박제(剝製)로 만들 것이고 그 피해는 온전히 우리 사회의 몫이 될 것이다.
지용구 |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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