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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의 상시·지속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 파견·용역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2017년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일환으로 2020년 3월 공무직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그해 4월에는 위원회 산하에 공무직 발전협의회를 발족했다. 올해 4월부터는 임금의제협의회를 구성하여 임금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해 왔다. 협의 과정에서 상당한 이견이 확인되었지만, 조정을 거듭한 끝에 노·정은 올해 8월 말 일차적인 결실을 함께 맺을 수 있었다. 비금전적 처우, 호칭, 휴가·휴직, 교육훈련, 산업안전관리 등을 포괄하는 ‘공무직 인사관리 가이드라인’과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지급 등을 원칙으로 삼는 ‘임금 및 수당 기준 마련 계획’에 관하여 합의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향후에는 공무직 업무 분류 기준, 기관·분야별 공무직 임금 실태와 동일·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및 일반 근로자와 민간 근로자의 임금 실태 비교 등에 관하여 노·정이 함께 조사하고 분석할 예정이다.

공무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고 정당한 차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같이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실태조사와 분석도 객관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는 어렵다. 원래 현실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상호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구체적 사실을 폭넓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실들의 통합적 해석을 시도하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전에도 공무직과 관련한 조사와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정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실태조사와 분석은, 공무직과 관련한 맥락을 함께 학습하고 해석하여 공감대와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실태조사와 분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공무직의 업무 분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무직 수행 업무는 공무원과 공공부문 정규직 업무를 단순히 보조하는 성격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향후에는 공공부문 종사자로서 자부심을 높이고 공공행정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공무직의 숙련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직의 전문성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정하면서 업무 분류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동일 혹은 동종 업무로 구분된 범위 내에서 숙련의 단계적 향상 수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문성 강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훈련체계가 구축될 수 있으며, 이 업무 범위 내에서 전환배치와 경력 인정의 기준도 도출될 수 있다. 그다음 목표는 ‘공무원-공무직-민간 근로자’ 간의 정당한 차이에 관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유사한 일을 수행하더라도 공무원은 공무직과 비교하여 어떠한 책임을 추가적으로 져야 하는지, 그리고 공무직 근로자는 민간 근로자와 달리 어떤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이 문제는 오랜 기간 미루어 왔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 조직, 공공·민간 부문 종사자 간의 역할과 책임의 차이에 관한 사회적 합의의 기틀을 잡아야 한다. 공통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서로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개방된 관점에 선다면 단계적으로 신뢰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민 |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공무직발전협의회·임금의제협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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