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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걸고 국방을 강화함과 동시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과 가족에 대한 보훈도 확실히 챙겨야 한다고 주장해온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도 한 달이 되어 간다.

정권이나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게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는 보훈과 관련하여 새 정부가 짊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정권 초기이다. 그런 만큼, 오랜 기간 육군 장교로 복무하며 국방·보훈 관련 업무를 몸소 체험했던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 주길 바라는 보훈 정책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국가유공자 등록 심사과정에서 신청인의 입증책임 부담을 완화시켜 주고 국가의 입증책임을 강화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행 법령하에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기 위한 입증책임은 당사자나 그 유족에게 있어, 의학정보 등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국가유공자임을 스스로 입증할 만한 법적 논리와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우수한 물적·인적 자원을 확보한 국가 차원의 적극 행정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기관 협조체계 구축과 군 사건·사고 관련 기록물 관리 강화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 내용처럼 국가유공자 등록심사 과정에서도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에서 복무하다가 상이(질병)를 입었거나 공무상 사고로 상이를 입은 군인 등에 대해서는 군 공무수행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공상추정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둘째, 6·25전쟁 당시 계급이나 군번 없이 비군인 신분(학도병, 유격군, 노무자 등)으로 참전했던 분들에 대한 참전유공자 인정 문제와 월남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보다 전향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비군인 참전용사는 대부분 80·90대로 고령이고 적지 않은 수가 사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원인의 억울한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자세가 요구된다. 특히 비군인 참전유공자 인정 문제에 있어서 행정기관 간의 협업과 유연성 있는 업무추진으로 그분들께 최소한의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엽제의 해독성이 확인되고, 고엽제 관련 정보의 공개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역학조사를 통한 고엽제 피해 질병 인정 범위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기존에 인정받은 상이처가 악화되어 사망한 경우에는 당사자가 생전에 재판정 신체검사를 신청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유족이 승급 여부를 판단 받을 기회를 보장하여 일평생 병마와 싸우며 고통받아온 월남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 대한 예우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셋째, 보훈 예우를 함에 있어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상응한 차등을 두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군 공무 수행 중 상이를 입은 사실이 분명함에도 심의과정에서 질환의 특성(만성질환, 퇴행성 질환 등)에 지나치게 가중치를 두어 발병원인에 대해 개인적·체질적 소인으로 취급하고 군 공무기인성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고엽제 피해자들의 희생과 공로가 동일함에도 단지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관련 법령상 어떠한 분류체계에 속하는가(고엽제 후유증, 후유의증)라는 우연적 사정에 의해 보상과 예우가 현저히 차이 나는 것 또한 사회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합리적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훈대상자들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할 때 존경과 예우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아픔을 많이 간직한 분들로서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분들 대다수는 너무나 익숙하게 관련 규정과 오랜 관행에만 집착하는 융통성 없는 행정으로 인해 보훈심사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며 고통받고 있기도 하다.

보훈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강한 국가를 만드는 주춧돌이라는 점에서 부디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그러한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가득한 따뜻한 행정, 적극 행정, 혁신 행정을 펼쳐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진진화 예비역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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