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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호는 숭례문이고,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이다. 그렇다면 제1호라는 고유한 순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일제강점기에 시작해 해방 이후 제정된 우리의 문화재 지정번호는 조선총독부 청사에서 가까운 것을 우선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다. 중요한 순서로 번호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서울의 중심에 자리한 유적들이 앞선 번호를 차지했다. 그 이후 문화재로 지정된 순서에 따라 그 번호가 부여됐다.

얼마 전 문화재청은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이란 명칭에서 번호를 없애고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한다는 식이다. 지정번호가 문화재의 가치 서열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만큼 운영방식을 개선하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는 사용자들에게 편해야 하고 인식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취지가 좋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급히 제도 개선을 진행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다소 늦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현명하다. 필자는 지정번호 사용을 폐지함으로써 생기는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의외로 오래 사용해온 지정번호에 익숙하다. 지정번호 폐지로 인한 큰 사회적 비용 등에 따라 반대 의견이 많을 수도 있다. 그래서 폐지보다는 삼가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사회적 혼란이나 비용을 줄이는 편이 좋겠다. 즉 대외적 사용만 폐지하면 안내판이나 누리집, 각종 책자를 시급하게 당장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고, 향후 점차 문화재에서 지정번호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하면 된다.

지정번호의 외부 사용을 제한하고 내부 관리번호로만 사용한다면 이름만으로는 문화재를 구별하기 어려워지거나 지정순서를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해 지정번호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숭례문의 정확한 이름이 ‘서울 숭례문’인 것처럼 문화재 지정 명칭에 기본적으로 지역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혼란은 생각보다 적을 것이다. 즉 지역에 기반한 부동산문화재의 경우 그 명칭이 겹치는 경우가 없어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될 부분은 없을 것이다. 다만 지역을 표기할 수 없는 동산문화재의 경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같이 동일한 명칭의 문화재가 있다. 이런 문화재의 경우 ‘소장자 또는 소장처’ ‘지정 연도’ ‘제작 연도’ 등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도지정문화재 역시 국가지정문화재처럼 지정번호를 사용하고 있기에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방향을 일치시켜 나가야 정책의 통일성을 높이고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문화재의 포괄적 이해도 확대됐으면 좋겠다. 지정 문화재만이 아니라 지정되지 않은 것도 가치가 크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한때 문화재를 문화유산으로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최근에는 지정문화재뿐만 아니라 ‘지정되지 아니하였으나 보호가치가 있는 근현대문화유산’ 등에 대한 보호와 활용도 주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올해가 문화재 행정 6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지정번호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혼란을 줄이며 새로운 문화재 행정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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