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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광장에서 밀실로 내몰리고 있다. 밀실에서 생활하고, 화상으로 친구를 만나는 비대면 행위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

새로운 소비행위는 새로운 노동을 요구하는 법이다. 가게에서 직접 물건을 골라주던 마음씨 좋은 슈퍼 아저씨가 대형 할인점 진열대에 상품을 전시하는 무표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바뀌었고, 이제는 아예 현관까지 총알배송하는 플랫폼노동자로 대체될 기세이다. 하지만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각종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표준 고용관계 노동자를 대상으로 성립된 20세기형 사회보장제도가 21세기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기본소득과 부의 소득세, 그리고 안심소득이 공론의 장으로 소환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제도가 빈곤 완화나 분배 개선에 효과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기본 원리는 같고 기준 소득의 수준과 세율, 지원 수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기준점은 기존 복지국가 체제와의 정합성 문제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재기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안심소득 시범사업 자문단’을 출범시켜 내년에 서울시민에게 안심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선거 당시 공약에 의하면, 안심소득은 중위소득 100% 이하의 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에서 부족한 소득의 50%를 차등적으로 지원한다. 물론 제도의 구체적 내용은 시범사업이 끝난 다음에 설계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필자는 이러한 ‘오세훈표 안심소득’이 도무지 안심되지 않는다.

첫째, 안심소득은 먼저 ‘서울특별시민 vs 비서울 일반 국민’으로 나누고, 다시 서울시민을 ‘받는 시민’ vs ‘주는 시민’으로 나누는 이중 분할 정책으로 연대성에 기초한 복지국가 원리와 배치된다. 한마디로 ‘국민을 두 개의 계층으로 분절시켜 지배하려는’ 신우익의 전략 문법에 충실한 정책이다. 또한 선거 공약대로 서울에 거주하는, 소득이 전혀 없는 4인 가구에 중위소득의 50%인 3000만원을 보장하면, 지방 저소득자의 서울 입성 붐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는 지자체별로 한시적으로 100만원 이내에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둘째, 안심소득 공약에서는 중앙정부가 실시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장려세제는 폐지하고 그 절감된 재원을 안심소득으로 돌린다고 하였으나, 서울시장에게 중앙정부의 제도를 폐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셋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안심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은 한국 복지국가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생계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상담을 받는 것은 이후에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받게 되는 접수 단계의 의미도 있다. 하지만 안심소득이 시행되어 생계급여가 폐지되면, 사회복지 공무원이 아닌 세무공무원이 지원자의 생활 여건이 아닌 소득만으로 자격심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안심소득 지원자는 사회복지의 본령에 해당하는 돌봄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서비스에 연계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서울시에서 선거 공약대로 안심소득을 시행하게 되면 복지국가의 발전은 고사하고 계층 간, 지역 간 분절로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것이 필자가 안심소득에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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