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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간호사의 업무를 규정하는 보건복지부의 법안 개정을 놓고 의사와 간호사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3일 “전문간호사는 의사의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또는 ‘지도하에’ 분야별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의 지도하에’라는 말을 스그머니 감춘 채 ‘진료에 필요한 업무’만을 내세워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를 전문간호사가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다 “비전문가인 간호사에게 국민건강을 절대로 맡길 수 없다”며 “전문간호사 개정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라면 ‘의사의 지도하에’ 전문간호사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도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의사는 전문가이고 간호사는 비전문가인가? 전문가란 특정분야의 지식, 경험, 기술 등을 풍부하게 갖춘 사람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과학, 경제, 법, 정치 등 분야마다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전문가라면 간호 분야에서는 간호사가 전문가들이다. 다시 말해 의사가 의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상당한 시간동안의 교육과 훈련,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한 성찰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축적했다면 간호사 역시 간호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결합을 통해 해당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습득한 전문가들이다. 여기에다 전문간호사는 보건, 산업, 마취 등 총 13개 해당분야에 대해 3년 이상의 실무경력과 2년간의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높은 수준의 전문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숙련된 간호사들이다. 그럼에도 비전문가들이란 말인가? 전문간호사제도는 이미 미국, 일본 등 세계 50여 개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로 이들 나라에서도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문간호사는 의사인력의 부족으로 의료접근성을 해결하고자 지난 1973년 “분야별 간호사” 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마취간호사와 정신간호사는 마취 분야와, 정신 분야 수요에 대한 의사 공급 부족을 해결하고, 보건간호사는 농어촌 지역의 의사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추진됐다. 그리고 2000년에 “전문간호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의료행위의 전문화 및 세분화와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간호업무 자체의 높은 전문간호가 요구됐지만, 지금까지 전문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범위가 규정되지 못해 제역할을 하지 못해왔다. 개정안은 분야별 업무 범위를 규정해 전문간호사 자격 제도를 활성화하고, 전문의료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기 위해 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를 위한 연구와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관계 단체들과 함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 끝에 마련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협회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귀를 틀어막은 채 전문간호사는 비전문가들이라 말할 것인가? 노인인구의 증가와 만성질환 및 복합질환 유병률 증가,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 향상 등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문적인 간호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데도 전문가들을 비전문가들이라 말하며 수수방관한 채 두고만 볼 것인가? 옛날에는 한 우물만 파면 전문가로 불리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우물만 파다가 내가 판 우물에 매몰돼버리고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과 소통이 안 되는 전문가로 매몰 돼버리고 만다. 구구절절이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듣지 않고 귀를 막은 채 자기주장만을 고집하는 의사협회의 현재 모습이 그렇다. 의사협회는 이제라도 무엇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일인지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조문숙 병원간호사회 회장(대한간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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