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근 아이와 산책 중에 대전시의 2022년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시민참여 홍보 현수막을 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200억원 예산을 시민참여를 통해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지방재정법과 그 시행령에서 지방예산 편성 등 예산과정에서 주민참여를 보장하고 그 방법으로 공청회 또는 간담회, 설문조사, 사업공모, 그 밖에 조례로 정하는 방법을 열거하고 있었다.
이에 근거하여 대전시는 지난 7월 예산편성 과정에 시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예산을 운영하고자 110명의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구성했다. 해당 위원회는 다양한 분과위원회를 두어 차수를 달리하여 예산심사를 진행했고 1차 심사에서 예산액의 200%, 2차 심사에서 예산액의 130% 범위를 지원 사업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대전시는 시정참여형과 구정참여형 사업으로 나눠 8월11일부터 31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투표를 진행했다. 시정참여형은 보육, 안전·행정, 경제·과학, 교통·건설 등으로 분야를 구분해 어린이집 대체조리원 지원사업, 사회적 약자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 지하철역 교통약자를 위한 하이패스형 개찰구 설치 등 60개 사업이, 구정참여형은 건설, 공원녹지, 청소년 등으로 분야를 구분해 어린이·노약자·장애인이 통행하기 좋은 거리, 주민 만남과 소통의 마을놀이공간, 장애·비장애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활동 지원 확대 등 120개 사업이 제안됐다.
온라인 시민투표 50%와 9월 중에 진행될 온라인 시민총회 50%를 합산하여 최종 사업이 선정된다니 기쁜 마음에 온라인 시민투표에 참여하려다 순간 망설였다. 예산편성 과정에 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시민의 직접 참여로 결정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며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선호하는 결과를 위해 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법이지만 투표 결과가 반드시 최선의 선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득 2011년 MBC에서 방송됐던 <나는 가수다>가 떠올랐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경연의 첫 탈락자로 국민가수라는 김건모가 결정됐던 것이 생각났다. 탈락 이유는 그가 경연 중에 너무 장난스러워 보였다는 것이었고 노래만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이유로 제작진의 긴급회의 후 동료들 동의를 거쳐 재도전이 이뤄졌다. 이후 시청자들을 통해 불공정 문제가 제기되면서 그의 하차로 경연은 마무리됐다. 당시 필자는 김건모의 탈락 이유가 단지 그의 장난스러워 보이는 행동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보다 500명 청중평가단의 1인 1표제가 이유가 됐을 것이라 짐작했다. 쉽게 생각하면 투표결과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가수가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가수라 생각할 수 있지만 특정 청중평가단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많이 받은 가수가 생존(?)에 유리했다. 실제 그렇게 평가됐는지 알 수 없지만 예를 들어 청중평가단 500명 모두 김건모의 노래가 훌륭해 2등은 충분하지만 1등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었다. 이 경우 1인 1표제에서는 투표결과 1표도 받을 수 없었다. 이와 달리 499명의 청중평가단으로부터 최하위라 생각되는 가수의 노래가 평가단 중 단 한 명으로부터 표를 받았다면 객관적으로 김건모의 노래가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김건모는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실시하는 투표가 다수의 의견은 반영하지 못하고 소수의 의견에 따라 엉뚱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투표라는 합리적 수단을 사용하지만 투표라는 행위는 이성적 사고가 직관적 판단과 서로 충돌하여 반영된 결과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투표는 ‘누가’ ‘누구를’ 또는 ‘무엇을’ 선택하는 결정이지만 주체인 ‘누가’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고, 설령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객체인 ‘누구를’ 또는 ‘무엇을’에 대한 정보가 결핍돼 있거나 왜곡될 수 있다. 특정 계층 또는 집단 등의 과잉대표 문제 또한 존재한다. 대전시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다수의 참여를 보장 또는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투표를 실시한다. 그 방법과 결과를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임석재 한국연구재단 선임연구원·작가
오피니언 - 경향신문
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www.khan.co.kr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택근의 묵언]간도에는 지금도 죽은 자들이 살고 있다 (0) | 2021.09.06 |
---|---|
[에디터의 창]평가는 나만의 것 (0) | 2021.09.03 |
[고영의 문헌 속 ‘밥상’]돈 전(錢)자도 따라왔던 ‘전어’ (0) | 2021.09.03 |
[인생+]항노에서 향노로 (0) | 2021.09.02 |
[인문의 길]중년 여성의 ‘자본’ 읽기 (0) | 2021.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