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감격에 겨운 사이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누리호의 성공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정부 출원 연구원 중 거의 밑바닥 임금을 준다. 그나마 지난번 나로호 실패 이후 월급이 깎였고, 성공 후에도 원상회복이 없다. 새벽 2~3시까지 일해도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근태 기록을 저녁 8시 이후에는 찍을 수 없도록 조작해 놓았기에 추가 근무를 해도 근거가 될 기록 자체가 없다. 주말 근무해서 52시간을 초과하는데도 추가수당 대신 대체 휴일만 제공한다. 1년 지나면 이마저도 마일리지 소멸하듯 사라진다. 항우연 노조는 누리호 발사 성공에 대한 언론의 상찬은 자기끼리 벌이는 잔치일 뿐 정작 연구원은 기계 부품이자 소모품일 뿐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고 한탄했다. 10년 이상 우주개발사업에 참여해온 기술용역을 6개월마다 재계약하는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고용상황도 폭로했다.
기업가 정신이 이끄는 항우연인데 정작 연구원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니! 도대체 이러한 기괴한 조합이 어떻게 가능한가?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은 이에 대한 답을 준다. 지난 정부가 주 최대 노동 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히 줄이면서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노동 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하겠다. 노동계는 주 최대 노동 시간이 기본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 52시간을 더해 최대 92시간까지 늘어난다며 반발했다. 정부는 주 52시간 틀 안에서 노동 시간 유연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받아쳤다. 일이 적을 때는 주 5일 8시간씩 40시간 정상 근무하고, 많을 때는 초과 근무해서 주 64시간 일한다. 월평균을 내면 결국 주 52시간 일한 셈이 된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주장이 현재 노동 현장에서 포괄임금제란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편법을 합법화해주는 꼴이 될 거라는 비판이 나왔다. 포괄임금제는 법적으로 가능한 최장 노동 시간인 52시간 임금을 미리 계산해 월급을 준다. 원래 노동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는 업종에 한정된 제도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업종에 퍼져 있다. 야근을 밥 먹듯 해도 기록이 남지 않아 사실상 무한노동을 용인한다. 이러한 비판에도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일상을 비상시국으로 만들어 노동자에게 초인적 노력으로 성과를 초과달성하라고 강제한다. 주 40시간 ‘정상 근무’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기본임금이 너무 낮아 주 52시간 아니 그 너머 ‘비정상 근무’해야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을 포기당하고 죽어라 하고 장시간 노동할 수밖에. 기업가 정신이 지배한다는 4차산업 분야에서도 사실상 강제된 노예 노동이 판치는 이유다. 어떤 집단이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려면 헌신할 수 있는 미래의 이상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해야 한다. 노예 노동에 허덕거리면서 그러한 믿음을 공유할 턱이 없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