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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가 중간쯤 지나고 있던 지난 2일 밤, MBC에서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봤다. 배우로도 좋아하지만 예능에 나올 때 더 정이 가는 김광규씨가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나 혼자 산다> 초창기에 등장해 인기를 끌다 프로그램을 떠났던 김씨는 추석연휴 특집편에 출연했다.
오랜만에 그의 일상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김씨가 문밖의 택배상자와 함께 신문을 집으로 들여오는 순간부터 웃고 즐길 수 없었다. ‘종이신문 등판’이란 자막과 함께 화면에 신문이 나타나자 스튜디오에 있던 다른 패널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방송에 나와선 안 되는 물건이라도 나온 듯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배우 하석진씨가 웃으며 김씨에게 묻는다. “종이신문 보고 그러신 건 아니죠?” 코미디언 박나래씨가 화답한다. “설마 종이신문 보겠어?” 김씨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한다. “휴대전화로 (신문을) 보니까 자꾸 미간을 찌푸리게 되고, 눈이 아파서. 그래서 종이신문을 다시 구독하고 있다.”
사실 나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을 보면 반가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 신문이 경향신문이라면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라도 사서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종이신문을 본다는 것은 희귀한 행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종이신문을 보는 것이 놀림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여나 지금도 돈과 시간을 들여 종이신문을 보고 있을 경향신문의 소중한 독자들이 그 방송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독자들을 대신해 종이신문이 좋은 이유를 그날 김씨를 놀렸던 분들에게 굳이 알려드리고자 한다.
독자들이 집이나 사무실에서 아침에 받아보는 종이신문에는 뉴스라는 수많은 상품 중에서도 최상품만 담겨 있다. 신문사는 전날 늦은 밤까지 고민을 거듭해 뉴스를 고르고, 그렇게 쓴 기사를 고치고 또 고친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문장의 토씨 하나까지 검토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완전무결한 신문이 만들어지지는 않겠지만, 최상에 가까운 상태를 만들려 끝까지 애쓴 결과물이 실린다.
종이신문은 흐름을 타고 뉴스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1면에서 시작해 마지막 오피니언면까지, 뉴스들을 순차적으로 읽어보면 지금 이 사회의 주요한 현안이 무엇인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이와 함께 해당 신문사가 뉴스를 취사선택할 때 어떤 가치를 가장 앞에 두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물론 온라인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로 뉴스를 유통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종이신문이란 매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신문사는 종이신문을 정성 들여 만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신문을 스스로 선택해서 보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한 달 구독료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종이신문을 신청한다. 이들은 방송에서 놀리듯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뉴스를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고마운 고객들이다. 독자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었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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