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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30일 JTBC <뉴스룸>. 경북 경산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추가 확진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뉴스에 등장한 원아는 수줍은 표정으로 “마스크 잘 쓰고 손을 잘 씻었어요”라고 말했다. 원장은 “유아들은 (마스크 착용을) 지켜야 할 약속으로 접근했고 그 약속이 생활의 습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원아와 교직원을 합쳐 200여명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은 경산중앙유치원 사례다.
# 8월31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의 코로나19 브리핑. 사회를 맡은 방대본 관계자가 ‘깜깜이 환자’ 증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면서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깜깜이 감염’과 관련해 시각장애인분들께서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시면서 개선을 요청해오셨습니다. 국민들의 의견을 받아서 그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자 합니다. ‘감염경로 불명’이나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 환자’로 하려 합니다.”
마음이 환해졌다. 전광훈 무리의 난동에 이어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승객을 슬리퍼로 때린 남성을 보며 좌절감에 시달리던 참이었다. 확진자 폭증 자체보다 ‘시민성’이 사라진 공동체의 민낯이 더 두려웠다. 내가 성급했다. 불편을 감수하고 약속을 지킨 어린이들, 부당한 현실의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 이를 받아들여 스스로를 교정하는 공직자. 희망의 근거는 있다.
차별과 배제, 비난과 혐오, 분열과 선동은 손쉬운 선택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해내지 못한다. 정치사회학 연구자 장진범씨는 방대본 브리핑 내용을 토대로 ‘K방역’의 성과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짚었다.
“‘슈퍼 전파자’ 논란은 31번 환자가 발생한 이후 절정에 달했다. 방대본의 답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슈퍼 전파자’가 아니라 ‘슈퍼 전파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2월19일). 둘째, 감염병 환자는 ‘원치 않는 질병에 감염된 환자’(2월23일)로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배려’와 ‘응원’(3월20일)이다. 5월 초 이태원클럽발 집단감염 국면에서도 방대본은 일관된 태도를 견지했다. 진단검사가 ‘아우팅’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들여 이태원 방문자에 한해 익명검사 전국 확대와 동선 공개 축소를 결정했고(5월13일), 지자체에 동선 공개 관련 원칙 준수를 재차 당부했다(5월21일). 진단검사는 크게 증가했다.”(<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정부가 추석 연휴(30일~10월4일)에 이동 자제를 권고했다. 초유의 일이지만 불가피한 조치다. 5월 초 황금연휴를 떠올려보자. 4월30일 ‘제로’였던 지역 감염자는 이태원클럽발 전파가 확산되며 5월9일 17명으로 늘었다. 이후의 카오스는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아이들의 등교, 수험생의 입시, 취업준비생의 새 출발을 닷새 연휴와 맞바꿀 순 없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추석에 오지 마라. 명절은 내년에도 돌아온다”고 하길 바란다. 자식들은 영상통화와 선물로 효도를 잠시 대신했으면 한다. 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보고 싶은 그리움도 견딜 때 나와 가족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는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높이지 않았지만, 국민은 절박한 마음으로 3단계 수준의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해답은 인내와 연대에 있다.
개별 시민의 희생과 협력이 정부의 책임을 감경해주지는 않는다.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은 “시민들의 노력과 함께, 헬스케어 커패서티(Healthcare capacity)를 올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헬스케어 커패서티’는 의료체계가 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최대 능력치를 말한다. 김 회장은 “지난봄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증할 때 (병상 부족) 상황은 이해한다”며 “그러나 이후 4~5개월 이상 흘렀는데도 중환자 병상이 충분히 확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증 환자가 즉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서울에 4개뿐이며, 경기·인천은 한 개도 없다(지난 5일 기준).
총체적 의미에서의 방역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2차 긴급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을 발표했다. 피해가 큰 계층에 맞춤 지원한다는 취지와 재정 악화 우려는 이해한다. 하지만 제도권 밖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까지 지원이 가 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별 작업에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연대의식 약화를 막기 위한 세심한 대책이 절실하다.
이제 정부는 실력을, 시민은 연대의 힘을 보여줄 때다.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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