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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곳곳에 흐드러진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가질수록 더 가지려 한다는 말이 스멀댄다. 그래서일까? 옛 시인의 봄노래를 읽다 보면 문득문득 가을보다 봄이 더 시름겨운 계절로 다가서곤 한다. 백낙천 같은 대시인조차 “가버린 봄 찾을 곳 없어 길게 한탄”했으니, 원인은 아무래도 상실에 대한 불안 탓인 듯싶다.

시성 두보가 통찰했듯이 봄은 “한밤에 바람 따라 슬며시 젖어들어 소리 없이 만물을 촉촉이 윤나게” 해준다. 봄은 그렇게 스며들어 한기 여전한 껍질 바깥으로 새순을 밀어내는 힘을, 덜 녹은 지표 위로 새싹을 밀쳐내는 힘을 안겨준다. ‘春(춘)’의 본뜻이 “초목이 새로 돋다”인 까닭이다. 움츠렸던 생명을 돋우어 만물을 번성케 함으로 우주를 활짝 피움이 봄의 본성이라는 얘기다.

그러한 호시절에 가슴 저린 시름이라니, 그 시적 감성이 느닷없고 뜬금없다. 그러나 이미 충분함에도 더 가지려는 욕망은 부지불식간에도 상실에 대한 불안을 촉발한다. 하여 봄꽃이 지천임에도 우리네 인간은 꽃 지고 봄 잃은 때를 미리 떠올리며 그 결여를 앞당겨 상심한다. 아예 봄 없음이 나았을 듯, 홀로 있는 빈 봄을 휑한 가을보다 더 아파한다.

올봄에도 대학은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교정은 2년째 텅 빈 봄이다. 대학생 사이에선 ‘미개봉 헌내기’라는 말이 쓰인다고 한다. 작년에 입학한 20학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학에 들어왔건만 통짜로 휘발된 새내기로서의 대학생활, 어느덧 2학년이 되어 21학번 새내기의 선배가 되었지만 대학생활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인 그들. 여전히 실질적으로는 새내기인 그들을 21학번 새내기와 구분하기 위해 ‘헌내기’라 부른다고 한다. 그들과 제대로 만나보지도, 교유하지도 못한 선배들의 안타까움을 ‘미개봉’이라는 수식어에 담아서 말이다. 코로나19로 야기된, 대학의 비정상이 빚어낸 안쓰러운 풍경이다.

세 학기째이지만 학생 드문 교정은 아직도 낯설다. 봄꽃은 시나브로 시야를 채워가지만 교정은 연신 비워진다. 비워진 봄, “홀로 읊는 봄날, 마음은 왜 이리 한스러운지”라 했던 저 옛날 최치원의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꽃 한 송이에도 우주가 피어난다는 봄이건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교정의 봄은 미개봉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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