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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올해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60년에 태어난 내게 지구적 차원에서 이 팬데믹만큼 강렬한 사건은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이에 필적하진 못했다. 상점 문이 닫히고, 학교 문이 닫히고, 공공시설 문이 닫히고, 급기야는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의 문까지 닫히는 것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팬데믹은 우리 인류 삶의 제도적 터전인 국가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어느 나라든 경제적 방역을 위한 ‘21세기판 뉴딜’을 소환했고, 이 뉴딜을 위한 ‘강한 정부’를 요청했다. 나아가 강한 정부는 고색창연한 민족주의를 호명했고, 이 민족주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무력화시켰다. 의학적 방역과 경제적 방역은 물론 통합을 위한 사회적 방역과 안전을 위한 심리적 방역까지, 이 모든 대처들에 가장 효율적인, 그리고 최후의 보루는 당연히 ‘강한 정부, 유능한 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더하여, 팬데믹은 정치적 포퓰리즘과 플랫폼 경제와 사회적 위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팬데믹은 지난 10년 거침없이 질주해오던 ‘21세기 서구적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었다. 공동체가 급작스럽게 큰 위기에 직면하면, 새로운 변화보다 기성 제도 유지라는 방어적 태도가 두드러진다. 팬데믹의 발생은 기성 정치사회를 공격해 지지를 높여온 포퓰리즘 정치세력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팬데믹의 충격이 거세질수록 국민 다수는 기성 정부에의 신뢰를 높였고, 포퓰리즘과 거리를 두게 됐다. ‘가장 큰 현상’인 세계화가 포퓰리즘을 촉진시켰다면, ‘가장 작은 존재’인 바이러스가 포퓰리즘을 제어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었다.
플랫폼 경제의 성장에 가속도를 더한 것도 팬데믹이었다. 지난 1년 인류 삶의 절반은 가상공간에서 이뤄졌다. 비대면·온라인·가상공간이 대면·오프라인·현실공간을 대신하면서 가상공간 거점으로서의 플랫폼 경제가 급부상했다. 다시 말해, 팬데믹의 발생은 비대면 사회를 본격화시켰고, 비대면의 장점은 온라인 쇼핑·교육·문화 등을 확산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은 구글, 네이버, 배달의민족 등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를 활짝 열었다. 플랫폼의 세계가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혁신의 공간인 동시에 부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낳고 있는 격차의 공간이라는 이중적 특성은 팬데믹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났다.
팬데믹을 가장 적절히 규정할 수 있는 말은 울리히 벡이 주조한 ‘글로벌 위험사회’다. 이제 ‘위험의 바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벡은 테러리즘·금융위기·기후변화를 글로벌 위험의 대표 사례들로 지목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생생한 사례를 올해 우리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예기치 않게 체험해 왔다. 코로나19의 세계화는 특히 건강과 생명에 직결돼 있는 만큼 다른 위험의 세계화보다 ‘공포의 세계화’를 더욱 강화시켰다.
나아가, 팬데믹은 그토록 견고했던 서구중심주의를 문득 돌아보게 했다. 미국은 물론 서유럽 국가들은 팬데믹의 대응에 대체로 무력하고 무능했다. 팬데믹에 맞서기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지만, 개인주의가 공고화된 서구사회에서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과감한 방역 정책은 처음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은 이제까지 근대 문명을 이끌어온 서구적 가치와 생활양식에 대한 성찰을 요청했다.
개인주의는 서구 근대사회가 발견하고 발명한 소중한 가치이자 이념이다. 그러나 팬데믹은 서구적 개인주의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줬다. 개인주의에 맞서는 공동체주의가 더 낫다는 것을 여기서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자유 못지않게 우리의 안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생산적 공존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코로나19 팬데믹이 요구한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생각들은 사회학 연구자로서 지난 1년 팬데믹을 지켜보며 떠오른 것들이다. 내년에 백신이 지구적으로 보급되면 팬데믹은 결국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이 지금도 낳고 있는 이 충격과 결과는 이후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로선 백신이 완전히 보급될 때까지 의학적 방역과 경제적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일 것이다. 더하여,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녘에 날아오르듯’, 나와 같은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팬데믹의 탐구를 경주하고 그 교훈을 숙고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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