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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설날 아침에 아내와 둘이서 차례를 지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한테 오지 말라고 했다. 산골 마을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이 많아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걸려 안타까운 일이라도 생기면? 귀농한 지 16년이나 지났지만 산골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도시에서 들어온 놈’이다. 백 번 잘하다가 한 번 잘못해도 “들어온 놈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기 쉽다. 나쁜 감정으로 하시는 말씀은 절대 아니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뿌리내리며 살고 계신 어르신들 말씀이라 잘 새겨들어야 한다.
코로나19가 아무리 지독하다 해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많이 움직이는 설에 혹시라도 마을 어르신 가운데 누가 코로나19라도 걸리면 ‘비상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한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자식들도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 살 때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산골에서는 이웃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두 번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다투고도 어린아이처럼 금방 친해지는 까닭은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쁜 농사철엔 지나가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데, 사람 손은 얼마나 귀하겠는가. 더구나 고된 일은 여럿이 함께하면 몇 배로 능률이 오른다. 농사철이 아니더라도 마을 잔치를 하거나 마을회관에서 밥을 나누어 먹을 때도 함께해야만 한다. 올해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해는 한두 사람이 어찌 그 많은 눈을 치울 수 있겠는가. 함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함께’라는 말속엔 여성들의 땀이 훨씬 많다. 농기계 쓰는 일이야 대부분 남자들 몫이지만, 여성들은 그밖에 자잘한 집안일에 밭일까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어떤 행사나 모임 때,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나 먹고 난 그릇을 치우는 일도 여성들이 다 한다. 열일곱 살에 산골에 시집와서 나이 여든이 넘도록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한 할머니도 있고(돈 관리를 남자가 하니까), 무릎이 닳아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농사일로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할머니도 계신다.
나는 가끔 때론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유모차’(乳母車)를 ‘아기차’라 하면 안 될까? 아기는 누구나 돌보아야 하니까. ‘남녀’를 ‘여남’으로 ‘남녀평등’을 ‘여남평등’이라 하면 안 될까? ‘남’자를 꼭 앞에 써야만 할 까닭이라도? 처가는 그냥 ‘처가’라 하는데 왜 시가는 ‘시댁’이라 하는가? 그냥 처가, 시가라 하면 안 되는 걸까? 꼭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로 나누어야 하는가? 살고 계신 지역을 따서 합천 할머니, 당진 할머니라 하면 되는데? 남성을 우월하게 만드는 말, 말, 말들이 언제부터 나를 그 안에 가두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누나가 셋이나 있는데도 친척들은 모두 남자(형)와 장례 문제를 의논하고 상주 역할도, 영정과 위패를 드는 것도, 부조금 나누는 것도 모두 남자가 결정하고 누나들은 뒤치다꺼리를 했다. 성별에 따라 역할을 한정하고 차별하는 일이 곳곳에 깔려 있는데도 알면서 모른 척한 죄는 더 깊고 크다. 나이 들고 내 모습 쪼그라들고 나서야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불현듯 밀려온다. 여태 군소리 한마디 없이 당연한 듯이 수백년 수천년 내내 밥상 차려주신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와 그리고….
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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