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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뉴요커들의 얼굴을 만났다. 관광객이 사라지고 재택근무가 시작되며 근교에서 출근하는 160만명의 직장인들이 더 이상 맨해튼에 오지 않으면서 뉴요커들만 남았다. 물론 유명 휴양지인 햄프턴이나 어퍼 뉴욕에 따로 저택이 있는 부유층들은 이미 피난을 떠났다. 또 식당에서 서빙을 부업으로 하던 브로드웨이의 무용수나 뮤지션들도 식당과 재즈바 등이 동시에 문을 닫자 대부분 뉴욕을 떠났다.

재택근무가 늘고 거리 두기가 필요해지며 아이를 가진 많은 가족들이 도시의 좁은 주거공간을 벗어나 교외의 넓은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이는 낮은 모기지 이자율에 건축자재 부족으로 인한 주택공급난과 맞물리며 미국 전역의 주택가격 폭등을 일으켰다. 남부 텍사스 오스틴의 경우 집값이 40% 가까이 올랐다. 집이 나오면 수십개의 입찰이 붙고 순식간에 제시된 가격보다 훨씬 높게 팔려나갔다. 심지어 고칠 곳이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없이 사겠다는 조건도 비일비재했다. 정확히는 뉴욕시와 샌프란시스코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난리였다. “핵전쟁이 나면 다 사라져도 쥐와 바퀴벌레, 그리고 맨해튼은 살아남는다”는 말로 대변되던 맨해튼 불패신화가 깨진 셈이었다. 미국 최대 부동산 사이트인 리얼터닷컴에 따르면 일년 넘게 지속되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올 6월을 기점으로 서서히 둔화되는 추세다.

반면 뉴욕시의 부동산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거래 물량도 팬데믹 이전을 넘어섰고 월세 매물은 다시 가격이 폭등해 현재 샌프란시스코를 제치고 뉴욕 월세가 미 전역에서 1위를 차지한 데다 팬데믹 이전 가격을 넘었다. 각국의 경제붐을 타거나 불법자금의 도피를 위한 외국인들의 구입이 적잖은 뉴욕 부동산 시장에서 외국인 구매 1위는 한때 러시아인, 중동인, 남미인을 거쳐 팬데믹 전에는 중국인이었는데, 현재는 캐나다인, 멕시코인 뒤로 순위가 밀렸다.

미국에서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연휴는 여름의 끝이자 본격적인 하반기 사업과 학교의 시작을 의미한다. 많은 회사들은 이를 기점으로 지난 일년 반 동안 지속해온 재택근무에 일주일에 두세번 이상의 출근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을 시작할 예정이다. 친구 스티브네 회사는 이미 7월부터 시작했는데 금요일에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이 상태가 계속되면 매일 출근으로 바꾸겠다”고 상사가 경고했다고 한다.

현재의 새로운 물결은 ‘피에드테어(pied-a-terre)’로 주거지와는 별도로 도시에 작은 숙소를 두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며칠은 맨해튼으로 출근해야 하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 있다보니 다시 가족 모두 이사를 올까 아니면 먼 거리를 매번 오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근교의 큰 자택은 주거지로 두고 뉴욕시에 작은 아파트를 사거나 빌려 파트타임 숙소로 둔다. 이렇듯 한발은 시외에 한발은 뉴욕 시내에 두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뉴욕시는 이에 세금을 물릴 것을 생각 중이다. 올해 예산에 편성되지는 않았지만 30만달러 이상에 10~13.5%의 세금을 물리겠다는 ‘피에드테어 세금’ 법안이 올라왔다.

오피스들은 다시 차겠지만 현재 약 19%의 상업 부동산이 비어 있다. 이 공간들이 어떻게 될지 미지수인 상태로 뉴욕의 9월 초 재개장이 다가오고 있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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