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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얼마 전 책을 한 권 냈다. 무명 필자의 책이니 별로 이슈는 못 되겠지 싶었는데, 운 좋게도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낸 1990년대생 필자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묶여 몇몇 언론에 소개됐다. “1990년대생 젊은 논객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감사하긴 한데, 소개 방식에는 동의가 어렵다. 해당 기사들은 “직접 펜대를 잡은 1990년대생”이라거나 “기득권에 날 벼리는 2030”이라고 필자들을 소개한다. 어쨌든 뭔가 새롭다는 얘기들이다.
정말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1990년대생이라고 다 같지 않다. 젠더, 지역, 계층, 학력, 성장환경에 따라 경험과 감각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경남에서 태어나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고졸 청년의 경험과 서울에서 태어나 사무직으로 일하는 대졸 청년의 경험 차이는 어쩌면 586세대 정치인과 1990년대생 유학파 청년 사이의 경험 차이보다 클지도 모른다. 시대적 사건이나 문화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겠지만, 1990년생인 내 경험은 1997년생보다는 차라리 1987년생과 가깝지 않을까. 1990년대생이라는 범주화는 이런 지점들을 편의적으로 뭉개면서 어떤 세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1990년대생이라고 다 새롭거나 기성세대보다 옳을 리도 없다. 언론은 1990년대생 필자를 조명하면서 이들이 보수야당은 물론 586세대와 여당에도 선을 긋는다는 점이 새롭다고 강조하는데, 양당 체제가 구축된 이래 그러한 관점에서 글을 쓰고 말해온 사람들은 언제나 일정한 규모로 있었다.
“언제나 젊은이들이 옳다”(신영전 교수)고 치켜세우는 모습도 관찰된다. 요즘 기성세대가 꼰대 소리 듣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건 알지만, 맥락 없는 상찬은 오히려 젊은이를 동등하게 대하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다. 우리 세대라고 어떻게 언제나 옳겠나. 우리 세대의 누군가들은 오늘도 각종 SNS와 블라인드와 에브리타임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을 텐데. 그러니 1990년대생이 새로운 감수성을 지녔다는 말은 도무지 동의가 안 된다. 그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동세대를 조롱하려고 ‘불편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도 우리 세대다.
특히 보수언론에서 제기하는 1990년대생 담론은 주의 깊게 살피게 되는데, 586세대에 대항하는 주체로서 1990년대생을 무대 위에 올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식의 시도는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 젊은 직원들이 새 노동조합을 꾸린 일이나 임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낸 사건들을 보도할 때도 유사하게 관찰된다. 이 경우에는 기존 노동조합이 도전받는 대상으로 설정된다. 언론의 진짜 관심은 1990년대생의 등장이 아니라 586세대와 노동조합을 고립시키는 데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여러 난점들이 있음에도 한 세대를 해석하는 일은 유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1990년대생 담론은 마케팅 요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해석의 틀로는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
최근에 1990년대생 필자들이 등장한 건 그냥 우연한 겹침이거나, 아직 젊으면서도 필자로 발탁될 만큼의 경험과 경력이 쌓인 나이대가 되었기 때문일 뿐인지도. 하긴, 10년 전쯤엔 1980년대생들이 ‘청년논객’ 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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