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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속담이 있다. 여동생에게 좋은 일은 남편인 매부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라면 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곧 배우자에게도 좋은 일일 테니 당연한 이치를 일러주는 속담이겠다. 이처럼 관계를 맺고 있는 둘에게 모두 좋은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동차에게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은 도시가 있을까? 자동차, 특히 개인교통수단인 자가용에 한없이 관대하면서,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즐겨 걷는 시민들을 똑같이 배려하는 도시가 존재할까? 그런 도시는 세상에 없다.
‘교통지옥’이란 제목의 뉴스 기사를 종종 본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도로를 메운 자동차들로 꽉 막힌 차로들과 달리 버스전용차로는 막힘없이 달린다. 세계의 선진도시들은 오래전에 대중교통 중심으로 교통체계를 바꿔 교통지옥에서 벗어났는데 우리는 서울시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도시들이 여전히 자가용 중심의 교통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나없이 자동차를 보유하고 타고 다니는 ‘자동차대중화시대’를 처음 맞았을 때 세계 도시들은 모두 차도를 늘리고 주차장을 확대하는 ‘공급정책’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공급정책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로 전환했다.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환승요금 감면 등 여러 혜택을 주는 한편 자가용을 이용하면 불리하도록 혼잡통행료 부과, 주차요금 인상 등 여러 규제조치를 병행하였다. ‘공급’에서 ‘수요관리’로, ‘대접’에서 ‘홀대’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자동차와 대중교통은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 자동차 이용이 편리하면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편안하고 유리해질수록 자가용을 덜 탈 것이다. 대중교통의 자리도 중요하다. 지하철이나 모노레일처럼 땅속이나 하늘 위로 피해갈 게 아니라 노면전차, 트램, 간선급행버스(BRT)처럼 땅 위를 차지하고 자동차 공간을 뺏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똑같은 이치가 ‘리모델링’과 ‘재건축’에도 적용된다. 오래된 아파트를 수평이나 수직으로 증축하면서 필요한 시설들을 새로 추가하는 리모델링 방식을 택할지, 건물과 나무들을 모두 철거한 뒤 새로 짓는 재건축 방식을 택할지, 선택의 기준은 당연히 경제적 유불리일 것이다. 리모델링이 활성화되려면 재건축이 불리해져야 한다. 재건축이 여전히 쉽고 유리한데 굳이 리모델링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발’과 ‘재생’도 마찬가지 관계다. 신개발이든 재개발이든 개발이 멈추지 않는 한 재생은 시작될 수도 없다. 연간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을 들여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성패는 재생보다 개발에 달렸다. 집값을 잡겠다며 신개발, 재개발에 불을 붙이고 부채질하면서 개발시대로 돌아간다면 도시재생은 허망한 꿈이 될 것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타고 노는 ‘시소’를 보라.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간다. 내려간 쪽이 올라가려면 올라간 쪽이 내려와야 한다. 둘 다 올라갈 수는 없다. 둘 다 좋을 수는 없다. 그러하니 선택해야 한다. 자동차인가, 사람인가? 개발인가, 재생인가?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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