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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떨 땐 숨을 헉헉 쉬어대며 자기 몸을 관리하는 모습에 대단함을 느끼다가도, 제한 없이 체육관에 입장 가능한 당연함에 질투가 났다. 땀을 쫙 빼면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짓는 연예인의 기분을 이해하고 싶었다. 숨을 헉헉대며 유산소운동을 할 체육관이 장애인에게도 있나 궁금했다.

몇 년 전 처음 체육관에 갈 때 용기가 필요했다. 카운터에서 ‘헬스 등록 좀 하려는데요’라고 한마디 해보려고 수많은 어투를 사전에 연습했다. 어눌하게 말해서 거절될까, 자신 없게 말해서 거절될까, 흥분되게 말해서 거절될까. 비뚤어진 몸을 바꿀 수는 없으니 곧은 목소리라도 가져보리라 몇 번을 흉내냈다. 별 소용이 없었다. 체육관 측은 샤워실 안전 문제로, 시설 미비 문제로 등록을 친절히 거부했다. 점잖음을 포기하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초래한 끝에야 불청객으로나마 입장하게 되었다.

다른 장애인들도 비슷한 처지다. 집 근처 동주민센터 헬스장 등록을 거절당한 장애인의 사연, 입장 가능한 수영장을 찾지 못한 장애인의 사연, 요가학원 등록을 거절당한 장애인의 사연, 장애인 대상 PT를 진행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 장애인의 사연은 장애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이야기이다. 장애인들은 문명적인 체육관에서의 운동관리를 위해서는 비문명적인 거리에서의 운동투쟁을 선행해야 한다.

장애인이 감히 운동을 꿈꿀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관련 통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장애인 생활체육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중 운동을 하지 않는 이들 중 다수가 운동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특히 코로나19 후 ‘먹방’ ‘쿡방’ 트렌드를 지나 ‘바프’가 유행 중인 지금, 또래처럼 몸을 가꾸고 싶은 20대 장애청년들이 꼽은 가장 높은 진입 장벽이기도 했다. 어느 체육관에 입장이 가능할지, 어떤 운동이 좋을지, 어떤 기구가 안전할지 알려주는 이 하나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운동에 참여한 장애인들의 체력이 향상되었고, 신체적 활력을 찾았으며,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고,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으며, 의료비 지출 감소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긍정 일색의 관련 통계가 있어도 대다수 장애인은 그 좋은 효과를 꿈꿀 수도 없다. 장애인이 쉽게 운동을 꿈꿀 수 없는 사회다. 그 결과,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더 높은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 유병률을 기록하고, 2배 가까이 높은 사망위험 수준을 보였다. 암 발병 위험은 5배나 더 높았다. 대다수 장애인은 장애의 악화보다, 체육관에 갈 수 없는 어려움 속에 병들어간다. 당장 땀 흘리는 타인으로부터 비롯되는 나의 시샘도 그들의 아름다운 육체미를 질투하기보다 건강한 생명력을 더 질투하는 것 같다.

장애인이 체육관에 가기 어려운 사회다. 미래의 우리 사회 평등 수준을 가늠하는 통계에 동네 헬스장에서 몸이 불편한 동료가 몇 명이나 있는지 묻는 문항이 있으면 좋겠다. 동네 체육관에서 지체장애인 동료는 어깨 운동을, 시각장애인 동료는 능숙한 요가를, 발달장애인 동료는 수영을 하고 있다고 당연히 응답한다면, 그때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평등해졌으리라. 함께 땀 흘리는 사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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