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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혈관과 같다는 오래된 비유가 있다. 인체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여 생명력을 유지시키고, 노폐물을 제거하여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혈관과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언론의 기능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인 시민은 언론이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판단한다. 언론은 또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제반 요인들을 감시 비판하여 건강성을 지켜 준다. 이것이 이상적인 언론의 모습이다. 물론 요즘은 이런 기능을 대체하는 많은 소통수단이 등장했으니 언론 대신 소통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소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존 언론의 신뢰도는 낮고, 영향력도 감소하였다. 그렇다고 영향력이 커진 새로운 소통 수단을 신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최근 방송사들에서 방송의 질을 높이고, 사고를 줄이기 위해 취재 지침들을 새로 정하거나 개정하려 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KBS는 지난 1월 이미 존재하던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의 지침서 격인 ‘신뢰 저널리즘을 위한 취재제작실무’를 발간했다. 취재, 뉴스와 프로그램 제작, 영상, 디지털 및 재난방송, 방송사고 대응 및 사후 처리 등 5개 부문과 언론윤리헌장 등과 관련한 보도 준칙에 더하여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 등 실무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했다고 한다. MBC도 ‘차별금지 및 소수자 보호’ ‘혐오표현’ ‘생명·자연·환경’ 등 관련 조항을 신설한 프로그램 일반준칙, 방송 실무자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관리자의 의무를 명시한 시사·보도프로그램 준칙 등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YTN도 관련 규정을 정비할 것이라 알려졌다.

그런데 언론이 지켜야 할 기본 정신을 담은 각종 강령, 요강, 준칙들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2021년 언론진흥재단 후원을 받아 언론윤리헌장을 제정·발표하기도 했다. ‘시민을 위한’이라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밝힌 서문에서부터 진실성, 투명성과 책임성, 인권 존중, 공정성, 독립성, 공론장, 다양성과 반차별, 언론의 품위, 저널리즘의 확장 등을 명시한 본문은 언론이 지켜야 할 가치들을 오롯이 담고 있다. 준칙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준칙의 존재도 모르고 지키지 않는 언론인들이 다수인 것이 더 문제다. 그래서 KBS에서 지침 제정으로 끝나지 않고 지침서 내부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제정 소식보다 더 반갑게 들리는 이유다.

언론진흥재단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기자들 중 53.6%가 ‘사회에 기여’할 거 같아서 언론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기자들이 지금 자신들이 모습에 얼마나 만족할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앞에서 언급한 자구 노력이라도 있으니 언론계는 그나마 다행이다. 준칙을 실천한다고 금방 기사의 질이 눈에 띄게 나아지고, 신뢰도가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그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소통의 영역에 있다. 새로운 소통 영역의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적 공론장을 구현할 가능성을 엿볼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저널리즘의 가치에서 볼 때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선정적이거나 편파적이고 과장·왜곡하는 콘텐츠들이 난무한다. 그런데도 콘텐츠 생산자 개인 또는 집단이 콘텐츠의 질과 관련하여 함께 고민하고 원칙을 정하고 실천하겠다는 집단 의지를 밝혔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원칙을 정해보려는 사회적 노력도 거의 없다. 공공의 가치를 강조하는 교육의 과정도 없다. 오로지 상업적 이윤 추구의 가치만이 의제로 떠오를 뿐이다. 가치 있는 콘텐츠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소통 영역을 지배하는 원리는 오롯이 산업 논리다. 그런데 새 정권은 그동안 미디어 정책이 공공에 치우쳐 있어서 산업적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중헌디?’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 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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