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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4주도 안 되는 기간 트랜스젠더 3인의 부고가 전해졌다. 언론에 의해 조명되지 않은 죽음 또한 많았을 것이다. 2017년 오마이뉴스에 실린 무지개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린의 글 제목은 ‘축제 아니면 장례식,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였다. 대구·경북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구성되었던 시점에 올라온 글이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현재. 한 유력 정치인의 입을 통해 “퀴어축제 보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의 권리”라는 말이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아 장례식이 어이지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는 이미 천만 가까운 관객이 본 성소수자 전기 영화를 방송하면서 주인공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장면을 ‘국민 정서’를 이유로 삭제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학생 보호 내용이 포함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혐오세력에 직면하고 있다. 작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지난 13년간의 발의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 계류 중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단박에 마법처럼 우리 사회의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법안은 단지 모든 사람이 각자 직업을 갖고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시민은 국가의 제도를 이용하거나 특정한 서비스를 구매하려고 할 때 거절당하거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갑자기 직업을 잃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법이 만들어진다고 한들, 개별 사례로 들어가면 여전히 피해를 입은 소수자들은 정부, 공적 기관과 사기업 그리고 개인들을 상대로 고단한 법적 투쟁을 계속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이것이 차별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다”면서 차별과 혐오가 아닌 욕설만 규제하려 한다. 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도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회다.

이번 사건에서도 나타났듯이 뉴스 댓글이나 SNS 공간을 통해 무지와 악의에 기반한 트랜스젠더 혐오가 너무나 쉽게 표현되고, 유포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언론도 매한가지이다. 정치인의 성소수자 혐오를 전달하여 증폭한다. 추모 메시지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사실 젠더 이분법에 근거한 차별적 발언임에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일도 있었다. 성소수자 혐오 행위들이 ‘차별’이라고 국가가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치 해도 괜찮은 일로 인식되는 중이다. 작가 쟁뉴는 <혐오 바라보기>라는 저서를 통해 ‘정상’ 규범에 벗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신체들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혐오차별 발언이 온라인 공간에서 얼마나 쉽게 발견되는지, 그리고 어떤 문제적 논리 구조를 쌓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트랜스젠더 혐오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온라인상에서 대중화된 형태로 혐오가 등장하여 손쉽게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 네트워크 자체가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니며, 연대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지난 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힘을_보태어_이_변화에 #변희수_하사를_기억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추모와 애도의 공간을 구성했다. 하지만 상처가 증폭되고 혐오가 정당화되는 데에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온라인’이라는 조건이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어떤 표현은 성소수자 차별이다”라고 천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공격을 당하는 소수자들이 더 이상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혐오에 직면하여 그 스스로가 혐오가 혐오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차별과 혐오는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차별금지법안의 제정은 이제 ‘나중에’가 될 수 없는 일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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