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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7번, 9번, 11번.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이들 숫자는 방송사가 몇개 없던 시절에 자란 분들에겐 너무 익숙한 TV 채널입니다. 9번에 나온다는 것은 공영방송 중에서도 광고가 없는 방송을 뜻하였습니다. 그만큼 ‘엄근진’한 것이지요. 보다가 재미없는 부분이 나오면 리모컨 위의 버튼을 누르면서도 “채널이 돌아가다”라 표현하는 것은 로터리식으로 돌리는 예전 TV의 다이얼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제는 돌아가는 다이얼도 없고 콘텐츠 역시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내가 보고 싶을 때 보는 온 디맨드로 변화하면서 예전 TV 채널의 고유성 역시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합니다. 알리고 싶은 것을 잘 만들어서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 ‘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궁리한 내용을 ‘꺼내어주길’ 기다리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꺼내는 방식 역시 자사 플랫폼뿐 아니라 포털과 동영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다보니 제조와 유통이 분리된 영화산업과 다르지 않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광고 없이 유료 구독으로 콘텐츠가 제공되면서 협찬이란 이름으로 광고 메시지를 실어나르던 매체의 제작 생태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인기 많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십수개에 이르는 광고를 참고 보아주는 시청자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주입하던 광고주들은 이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자사의 메시지를 다른 콘텐츠 안에 PPL로 녹여내는 것을 넘어 스스로 브랜드의 콘텐츠를 만든 후 이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창구 또한 예전 공식 홈페이지 같은 딱딱한 방식이 아니라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나 인스타그램같이 고객에게 친근한 매체로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예전 타인의 플랫폼에 비용을 지불하고 일부의 시간을 사는 방식에서 이제는 나만의 창구를 만들고 나의 아카이브를 쌓아가는 견실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쌓인 자료의 일관된 모습이 자연스레 브랜드의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됩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잠시 보이고 휘발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몇년치의 흔적이 타일처럼 보이는 연대기의 섬네일을 통해 한눈에 “느껴지는”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지난 몇년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함은 다시 앞으로의 몇년 동안 어떤 이야기를 같은 결로 할 것인가 하는 숙고의 화두를 던져줍니다.
여기서 한 단계를 더 나아갑니다. 매번 색다른 흥미를 끌고 감동을 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그만한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해 투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름의 얼개를 만들어 세계관을 형성하고 등장된 인물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즌을 설계해 나갑니다. 설정된 캐릭터들은 각자가 맡게 될 일이 자연스레 정해지기에 개연성 있는 흥미를 계속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시즌제로 이루어지는 시트콤과 같이 지속될 수 있는 구성은 제작의 수고를 줄여주고 캐릭터별 팬덤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관심을 그다음 시즌으로 유산과 같이 전해줍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형성된 팬덤이 제작에 참여하여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단계로까지 진화하고 있습니다. 채널은 수용자들로부터 피드백과 다시 피드백에 대한 피드백까지 전달받는 창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팬들끼리 모아온 의견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의 현실화를 요구합니다. 이처럼 팬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콘텐츠는 성공을 전제로 한 시도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채널은 플랫폼의 역할로 승격됩니다.
TV를 보기 위해 수상기의 주파수를 맞추던 시절의 채널과 피아를 가리지 않고 상호작용하는 지금의 새로운 채널은 다른 의미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채널은 “관계”와 같습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이들로부터의 조언은 내적 친밀감을 높여주고 내가 성장하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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