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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처럼 혀를 끌끌 차면서도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4인의 5차례 TV토론을 모두 봤다. 지난 2일 마지막 TV토론에서도 그야말로 막장 싸움이 펼쳐졌다.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되다 종료 20분 전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대장동 개발 특혜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아찔한 설전이 이어졌다. 두 후보는 “예의가 아니다” “이거 보세요” 등 감정 섞인 날선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

개발독재 시대의 선거는 ‘돈선거’였다. 유권자에게 선물 공세와 현금 투척으로 그야말로 표를 사들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에서 돈선거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김운범 신민당 후보는 공화당이 뿌리고 간 고무신·와이셔츠 선물과 현금을 공화당 이름으로 되돌려받자는 ‘선거 책사’ 서창대의 전략 덕분에 반전에 성공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980년대 4개 선거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선거가 있던 분기에 통화(본원통화)는 4.7%가량 크게 늘었다는 연구도 있다.

직선제 개헌을 이루고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선거에서 정치권은 돈 대신 혐오와 증오를 뿌리고 있다. 기호 1번과 2번 ‘양강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주술공화국’ ‘히틀러’ ‘신천지’ ‘좌파’ 같은 조롱과 막말을 퍼부었다. 무속 심취와 법인카드 유용 등 후보의 부인을 둘러싼 흠집내기 공방도 끊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 이번 선거는 ‘역대급 비호감’이다. 그 원인인지 결과인지, 선거 초반부터 네거티브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쪽이 대통령이 되든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으로는 미래 비전은커녕 혼란과 갈라치기가 국정 전반을 차지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공론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언론에 대한 적개심 또는 피해의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것을 보면, 선거 이후에도 네거티브가 국정의 동력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실제로 이 후보는 지난달 20일 경기 안양 유세에서 “저는 요만한(작은) 게 이만하게(커다랗게) 나오고 상대방은 이만한 게 요만하게 나온다”고 언론보도를 불편해했다. 지난해 말에도 지지자들을 향해 “언론을 믿지 못하겠다. 여러분이 직접 기자가 되어달라”고 했다. 윤 후보도 지난달 초 정책공약 홍보를 위한 ‘열정열차’ 안에서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그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주장했다. 언론 불신을 조장하면서 어떻게 소통과 화합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국내외 정치·경제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와 밀, 희귀광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북한의 핵 집착이 더 커질 것이고, 미국·서방 대 러시아·중국의 신냉전 체제로 변경되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불안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을 막기 위한 방역과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발등의 불이 됐다. 부채 증가의 후유증에 금리 상승이 겹쳐 서민경제의 위기도 챙겨야 할 부분이다. 급등락을 반복하며 서민생활을 위협하는 부동산 문제, 점점 메말라가는 좋은 일자리, 2030세대의 실업 문제, 지역 간 불균형과 계층 간 양극화는 ‘만성질환’이 된 지 오래다.

이 같은 수많은 과제들은 오는 9일 승패가 갈린다고 해서 사라질 게 아니다. 새 대통령은 막힌 곳을 뚫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고, 뚫지 못하면 돌아가더라도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과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화내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린다고, 그런 방식이 적중해 대권을 거머쥐었다고 해도 똑같은 방식을 유지했다가는 국정운영의 리스크만 키울 뿐이다.

승부는 양강 후보의 ‘콘크리트 지지자’가 결정내는 것이 아니다.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덜 싫어하는 후보를 뽑을지, 아니면 당선 가능성은 낮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에게 투표할지 중도층의 선택에 따라 판가름된다.

영화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만은 이기려는 서창대에게 김운범은 “저들이 틀렸다고 우리가 다 옳은 것은 아니오”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유력 후보에게서 이런 대의를 찾기 힘들다. 선거전에서 과오를 인정하고 화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대통령 개인의 선의로만 이뤄질 일도 아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유명한 경구처럼, 새 대통령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건 승리의 도취에서 깨워줄 건전하고 합리적인 비판과 견제일 수 있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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