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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시선

부탁한다, 제발

opinionX 2021. 5. 10. 09:41

합천군 여기저기에 펼침막이 붙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황매산 방문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방송에서는 황매산 주차장에 차 세울 곳도 없이 관광객이 몰렸단다. 그래서 도로에 밀려드는 승용차들 때문에 길이 막혀 마을버스도 들어오기 어렵단다.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참아달란다. 마을방송을 들으며 마을 아지매(할머니)와 감자밭에 김을 매고 북주기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고오, 우짤라고 저리 돌아다니노. 저리도 돌아다니고 싶나?” “요즘 도시 사람들은 집에 가만 있으모 갑갑해서 우울증 걸린답니다.” “맨날 날만 새면 일하는데 무슨 우울증이고.” “아지매, 도시 사람들은 하루 종일 숨도 쉬지 않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건물에 갇혀 사니까 우울증이 자주 온답니다. 농부들처럼 구름 흘러가고 바람 부는 들녘에서 여럿이 일을 하모 우울증이 우찌 걸리겠습니까?” “아무튼 황매산에 철쭉은 와 피노. 공휴일마다 비가 와서 얼릉 꽃이 져 버려야 도시 사람들이 안 오지. 저래 돌아다니모 언제 코로나가 멈추노?” “맞습니다. 코로나로 마을회관 문을 닫은 지가 1년이 넘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농촌 노인들이 병이 더 많다 카더마.” “마을회관에 모이지를 못하니까 없던 병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방에 혼자 앉아 있으모 자식 걱정, 먹을 걱정, 죽을 걱정까지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아이가. 그라이 없던 병도 생기는 기라. 그걸 요즘 ‘회관병’이라 카더마.”

농촌 마을회관은 어르신들이 모여 밥을 나누어 드시며 서로 안부를 묻는 곳이다. 농사일에 지친 몸을 달래는 곳이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며 자기 일처럼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곳이다. 때론 남의 흉을 보다가 서로 다투기도 하고, 언제 다투었느냐는 듯이 아이처럼 금세 웃기도 하는 곳이다. 도시 사는 자식들 걱정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곳이다. 더구나 온갖 삶의 지혜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희망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이 문을 닫았다. 그러니 어찌 ‘회관병’이 들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들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다. 그 소리 듣기가 좋아 온몸이 닳고 삭도록 한평생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어르신들이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한테 부탁하는 것이다. 농촌 어르신들이 ‘회관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라도 제발 돌아다니지 말아 달라. 더구나 무리지어 돌아다니지 말아 달라. 이름난 산과 들로 승용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뿜어대는 매연은 누가 다 마시겠는가? 산과 들에 꽃이 필 때, 농부들은 하늘에 별만큼이나 일이 많다. 모 심을 준비를 해야 하고, 양파밭과 마늘밭에 김을 매고, 감자밭에 북주기도 해야 한다. 생강을 심고 짚을 깔고 짚이 날아가지 않게 줄을 쳐야 한다. 고추, 여주, 호박, 참깨, 수세미, 가지, 오이, 옥수수, 콩도 심어야 한다. 그러니 꽃구경도 좋고 스트레스 푸는 것도 좋지만, 단 하루 만이라도 농촌 어르신들과 땀 흘리며 일을 해 보시라. 먹고사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농촌 어르신들이 ‘회관병’에서 벗어나, 남은 나날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게 조금만 더 참아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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