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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관중이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후임자를 묻는 환공에게 관중은 군주의 마음을 사기 위해 반인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역아, 개방, 수조를 멀리하라는 경계만 남겼다. 관중이 죽은 뒤 환공은 이들을 가까이 하였고 결국 이들의 전횡으로 제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공자도 관중 덕분에 중화 문명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인정할 정도로 관중이 세운 공은 컸다. 하지만 후대의 문장가 소순은 제나라가 혼란에 빠진 것이 관중 탓이라고 하였다. 관중이 훌륭한 후임자를 세워 놓았다면 간신들이 아무 짓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재 추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논의로 회자된다.
정말 그럴까? 누가 있어서 안 되고 누가 있으면 되는 정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정치다. 소순보다 훨씬 일찍 한비자 역시 관중을 비판했다. 다만 후임자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를 문제 삼았다. 군주와 신하는 인륜이 아니라 상호 이익을 기준으로 계약하고 거래하는 관계다. 각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평가와 상벌을 엄정하게 하면 간신이 설 땅은 저절로 사라진다. 반면 관중처럼 훌륭한 사람이 있다 해도 군주가 그에게 의존한다면 시스템은 그로 인해 무너진다. 위계가 아니라 직책에 의해서 철저하게 업무를 분장하고 집행 과정에서 모든 사적 관계를 배제할 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그러나 한비자가 말한 시스템은 3000년이 다 되도록 실현된 적이 없다. 진나라가 상앙의 변법으로 이를 구현하여 전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고는 하나, 그 역시 완벽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도 결국은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에 의해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에서 숱하게 보아 왔다. 그렇기에 여전히 사람 탓을 하고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규정하고 걸러내는 효용성에 있다. “이탈리아는 마피아들만 마피아 짓 하죠? 한국은 전부 다 마피아예요.” 드라마 <빈센조>의 대사 한마디가, 권력만 있으면 선을 아무렇게나 넘어도 된다고 여기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후려치는 일갈로 들린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