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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각자의 렌즈를 갖고 있다. 살아온 경험이 비슷한 사람들은 같은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보는 렌즈가 되기도 하고, 종교적 신념이 렌즈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청년들이 주최하는 기후렌즈로 보는 서울·부산 시장 선거 공약이라는 집담회가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그린워싱’이 주요한 성토의 대상이었다. 후보들이 겉으로는 기후위기와 친환경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개발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대규모 주택 개발이나 부산의 가덕도신공항 공약이 대표적인 비판의 대상이었다.

기후렌즈로 선거 공약을 본다는 것은 기후환경 분야만의 공약이 아니라 선거 공약 전체를 기후위기 대응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는 것이다. 기후환경 분야 공약의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인가도 평가하지만, 대표적인 개발공약들이 기후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더 비중을 두고 평가한다.

‘기후렌즈’로 본 시장 선거 공약
친환경 말하면서 개발 약속들만
“공약대로라면 어디 가나 공사판”
집담회 나온 젊은층들의 목소리
이 실망이 부디 마지막이기를

기후위기 극복은 피할 수 없는 앞으로의 시대적 과제이다. 재난영화의 한 장면으로만 생각했던 상황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그 서막이라고 한다. 기후위기가 모든 것을 바꾸고, 인류는 모든 일을 기후렌즈를 통해 보아야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경제와 산업은 물론 생활 전반이 큰 전환을 겪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부터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탄소국경 조정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들을 순식간에 좌초 산업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RE100과 ESG를 모르는 기업들은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화석연료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더욱 힘겨운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이번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들의 선거 공약을 기후렌즈로 평가해 보면 유력 주자들의 점수가 낮다. 그들의 일차적 관심은 주택공급과 신공항 개발이다. 집담회에서 청년들은 이들 공약대로라면 누가 시장이 되더라도 서울과 부산은 어디나 공사판이 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온실가스 배출의 증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발 사업이다. 아무리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고, 전기차를 많이 보급하더라도 개발사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탄소중립 사회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에 모범적인 대도시들은 재생에너지 보급에도 노력하지만, 개발사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더 고심하고 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 필요한 시멘트와 철근은 도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다. 시멘트 1t 생산에 0.913t의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철 1t 생산에 2.89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대도시의 기후위기 대응은 도시계획의 접근방식을 바꾸거나 건설 사업의 재료를 바꾸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선거 때가 되면 ‘그린워싱’에서 더 나아가 대규모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나 타당성 검토를 오히려 면제해주고, 여론몰이식으로 못 박기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선거과정에서 제시되는 개발 공약이 위험한 이유는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사업들을 섣부르게 결정하고 합리적 정책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유권자의 표만을 의식한 공약은 국가 전체로 보면 애물단지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타당성이 없는 사업일지라도 그 사업에 확실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들어 내서 사업의 전환이나 개선을 어렵게 한다. 소위 대못 박기의 전형이다. 새만금사업이 그렇고 4대강 사업이 그랬다. 표에 묶인 개발사업들은 합리적인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기후환경 정책을 열심히 제안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 개선에 노력해왔던 의원들이 선거 공약과 맞물린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은 벌써 10년도 전에 ‘녹색 성장’과 그린뉴딜을 국정의 핵심 목표로 발표하고 대외적으로 기후위기 극복의 선도국가처럼 행세해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은 기후위기의 대응이 미흡한 기후악당국가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겉으로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고 있는 ‘그린워싱’ 국가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이러한 비난이 과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인 것은 소수 후보들의 공약 중에 기후위기 대응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의 잣대로 세상과 정치를 보아가고 있다. 이번 선거가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마지막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어 갈 당당한 젊은 세대가 주역이 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길 기다린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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