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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정치, 경제, 안보상 대립으로 중증 복합골절 상태에 빠져 있다. 아예 소통과 대화조차 불가능한 최악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10월 스가 요시히데 총리 취임 후 한·일 양국 정상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9일 취임한 뒤 한·중, 한·러 외교장관 회담은 물론 한·미 간 2+2(국방, 국무) 장관 회담도 가졌다. 4강 가운데 일본 모테기 외무상과는 전화조차 못하고 있다. 모테기 외무상은 강창일 주일대사가 일본에 도착한 지 석 달 넘게 만나주지 않고 있다.
일본은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과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법 위반이라고 거듭 주장하면서 온갖 과거사 해법을 제시해도 연거푸 걷어차고 있다. 일본 언론은 외무성의 ‘한국 기피’ 현상이 만족할 만한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국에 사실상 대항조치라고 보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족시킬(?) 해법을 계속 내놓아야 하는, 납득할 수 없고 어리둥절하기조차 한, 이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까지 드러낸다. 한·일 간 대화와 소통 단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인식의 충돌뿐만 아니라 대북정책에서도 충돌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납치자 문제 해결은 물론 현재 보유 중인 모든 핵무기, 중단거리를 포함한 모든 미사일을 신고·검증·폐기를 통해 완전히 제거할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믿지 않고 있으며,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본 국민도 스가 정권과 반한 언론이 주도하는 한국비판에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베 정권보다 스가 정권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충돌해왔다. 한국의 586세대와 일본의 보수 우파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인식, 대북정책을 포함한 정체성과 세계관의 충돌로 간주해도 이상하지 않다. 동북아지역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대북 상응조치에 따른 북한 비핵화, 남·북·미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는 냉전체제 유지, 대북 제재 강화, 완전한 북한 비핵화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일본 아베 정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싼 한·일 갈등, 강제징용과 위안부 판결로 상호 불신과 반목이 극에 달했다.
과거사로 인한 불통이 깊어진 데다 새로운 불안 요소가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은 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미국·인도·호주를 포함한 쿼드(QUAD)로 동아시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동아시아 전략을 추진하면 한국 변수는 차별화되고 배제할 수 있다. 지난 16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며 한·미·일 협력이 공동 안전과 번영에 불가결함을 확인하였다. 일본은 불편한 상대인 한국이 쿼드에 참가하는 것을 내심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베트남과 뉴질랜드가 참여할 쿼드 플러스에 가입하기에는 한국의 자존심이 상처 받는다.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쟁점은 그대로 남은 반면 미·일 동맹과 쿼드 추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등 새로운 불안요소가 한·일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2월12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한·일 간 긴장관계는 유감스러우며 대북정책에서 한·일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였다. 지난 15일 국제회의에서 미국 고위당국자는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은 매우 고통스럽다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미·일 vs 한국의 불리한 구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동해에서 일본해 표기로 바꾼 것, 후쿠시마 오염수 무단방출을 미 국무부 지지, 미·일 정상회담에서 쿼드 백신협력 합의 등 그런 징후가 노골적으로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등 한·일 양국 간 과거사 쟁점인 데 비해 미·일 동맹의 쿼드 주도, 대북 제재와 북한 비핵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는 점이다.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외교가 완전히 고립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과거사와 달리 현재와 미래 쟁점은 한국 외교전략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대북·대중 인식의 격차, 한·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과 탈일본, 일본 매스컴의 한국 때리기 일상화, 한국의 국가위상 제고와 일본의 견제, 정치적 포퓰리즘의 유혹 등 한·일 갈등의 변수를 넘어서 국익 차원에서 냉정하게 대일정책을 구축해가야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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