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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공항의 보안검색요원이라면, 난도질된 몸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이토록 저열한 언어들을 뱉는가. ‘아르바이트 하다가 로또 취업한 인간들’의 말을 누가 고분고분 듣는다는 말인가? “공항 검색대에서 일해요”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진 세상이 무탈할 거라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협의가 부족했다지만 수천 시간 논의를 한들, ‘비정규직 주제에 선을 넘지 말라’는 전제는 요지부동이다. 내가 KTX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다룬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사례를 수집하던 2008년도에도, 학력차별을 벽돌 삼아 지어진 성은 난공불락이었다. 생산적인 논쟁의 장을 유도해도 결론은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는 도둑놈 심보”였다.

정규직 전환의 사회적 여파를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는 건 자유다만, 논의가 길어질수록, 오해를 풀자며 사실관계를 따질수록 어떤 노동자의 소중한 생애는 ‘공부 안 하고 편히 돈 벌려 했던 사람’으로 단순히 정리된다. 상대의 주장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기에 가능한 무례 아니겠는가.

인천국제공항 사무직 합격자 중 명문대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 부모님 직업과 소득, 자산규모 등을 보안검색 직원들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되겠지만 굳이 따지진 않겠다. 두 집단의 어학연수 경험 비율, 평생 사교육비 총액 등을 그래프로 만들면 사회의 불평등이 증명될 선명한 차이가 보이겠지만 그러지 않겠다.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몇 년을 종일 공부만 할 수 있는 게 단순히 사람의 의지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할 순 있지만 덮어두련다. 운이 좋아서 목표의식이 높아지고 남들이 선호하는 직장에 다니는 걸 자신에게 어울리는 급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니까.

20대 초반에 장기적으로 볼 생각조차 못하고 당장 직업을 구해야만 했던 구구절절한 개인들의 사연을 나열하진 않겠다. 그러니 반대편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 경쟁은 어쩔 수 없어도,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룰이란 게 있다. 하지만 한쪽에선 ‘남들 공부할 때 쉽게 돈이나 벌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면서 빈정댄다. 반칙은 누가 하고 있단 말인가?

자본주의적 시점에선 신의 한 수였다. 불안한 일자리 형태를 많이 만들수록, 을(노동자)들끼리 다툰다는 예측은 완벽했다. 바늘구멍을 만들고 통과한 을에게 갑(기업)이 괜찮은 보수를 지급하면, 사람들은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았다’면서 알아서 박수치고 선망한다. 그러면 노동자들 사이에 공정이란 단어로 포장된 벽이 생겨, 을(정규직)들과 자신이 을이 되리라 희망하는 이(취준생)들은 구멍 밖의 사람들을 섞여선 안 될 무리로 여긴다.

정규직 시켜주면 노조 만들어 회사를 장악하고 주도권을 잡는다면서, 마치 과거 안기부에서나 등장할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읊는 이유는 원래의 세상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으로 구분돼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없는’ 정규직 전환은 평등, 정의, 공정의 가치를 훼손했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생이 평등하지 않고, 정의로부터 멀어져 있는 걸 공정하지 않다고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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