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다행이다. 구체적인 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동안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부재(不在)’의 고민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래도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매들이 심하게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없어 다행이고,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제도가 이들에게 전혀 닿지 않았지만, 건강하게 살아남은 것은 정말 천운이다.
안타깝게도, 제주 세 자매와 같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법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한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가 2021년 4월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과 69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한 아동의 숫자가 무려 146명으로 파악되었다. 이번 사례와 같이 가정에서 출산 후 양육하는 경우나 신고되지 않은 보호시설로 보내진 경우를 고려하면 법 밖의 아이들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특히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주 아동의 경우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려고 해도 난민신청자 지위에 있거나 미등록 체류 중이면 제도적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아동의 출생등록은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다. 건강권, 교육권 등 인간이라면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은 아동이 공적으로 등록되어 법 안으로 들어온 이후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부모의 법적 지위 또는 출신지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를 보편적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2020년 대법원이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 될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 이를 침해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변화는 더디다. 법무부에서 작년 6월 출생통보제도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국회에는 이미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해를 넘겼다. 법 밖의 아이들은 위험하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새해에는 출생통보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