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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가까이 상업시설이 있거나 동네에 공장이 있다면 문제일까? 꼭 그렇지 않다. 어떤 종류의 상업시설 또는 공장인지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집 앞 식당에서 밤새 고기를 굽고 시끄럽게 떠든다면 문제다. 동네 공장에서 매연과 소음이 발생한다면 역시 문제다. 반면 집 가까이 세탁소, 과일가게, 꽃집, 빵집이 있다면 생활이 더 편해질 수 있다. 주거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가내수공업 공장이라면 동네에 있어도 상관없다.

섞여도 된다. 따로국밥만 맛난 게 아니라 섞어찌개나 비빔밥도 맛있는 음식이다. 주거, 상업, 공업이 섞여서 잘 지내던 도시를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으로 엄격히 갈라놓은 건 근대 이후다. 

그때가 언제인데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기능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계획한다. 신도시도 따로국밥처럼 만든다. 주거는 주거끼리만 묶고, 상업시설도 한곳에 몰려 있다. 공공기관이나 문화시설도 주거에서 떨어져 있어 출퇴근에도 시간이 걸리고 장보기나 관공서 일을 볼 때도 차를 타고 가야만 한다. 이런 도시가 꼭 좋은 도시일까?

뒤뜰에서 만든 물건을 앞마당에서 팔던 시절 일터와 집은 가까웠다. 1층에는 가게, 2층에는 사무실, 그 위는 집이던 시대에 출퇴근은 편했다. 걷거나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했다. 교외 주거지를 개발하고 신도시를 만들면서 집과 직장은 멀어졌고 자동차 없이 출퇴근은 불가능해졌다. 기존 도시를 고쳐 쓰는 대신 신도시 개발과 용도분리를 선택한 후과다.

용도분리뿐만 아니라 동선분리도 생각해볼 문제다. 자동차와 사람 동선을 입체 분리하는 것이 꼭 최선일까? 고속도로처럼 특수한 경우의 보차분리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차와 사람이 늘 함께 쓰는 거리에 육교나 지하보도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차를 모느라 사람을 땅속으로, 공중으로 내모는 반보행자시설에 돈을 투자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횡단보도를 그으면 될 일 아닌가.

아파트단지의 입체적 동선분리도 마찬가지다. 요즘 아파트 지상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단지 입구에서 차들은 지하로 내려간다. 자동차 동선을 지하로 분리해 차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지만 인적 드문 밤의 지상부는 호젓하다 못해 위험해 보인다. 보도와 차도를 지상과 지하로 분리하지 않아도 해법은 있다. 차도를 좁히고 꺾는 등의 과속방지조치를 한 ‘보차공존도로’를 만들면 된다. 분리 대신 공존으로 답을 찾은 좋은 예다. 안전한 거리는 별게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이 늘 이어지면 안전하다. 단지 안 큰길에 차가 다니고, 그 곁에 사람들이 오가고, 길가에 관리사무소와 어린이집과 상가들이 죽 늘어서 있다면 훨씬 더 정감 있고 안전한 아파트가 될 것이다.

분리를 명분으로 한 지하개발 주장 이면에는 다른 욕심이나 꼼수가 있을 수 있다. 고속도로 지하화와 대심도 지하도로 주장은 지하개발론의 단골 메뉴고, 최근의 자율주행로봇 지하터널 주장까지 입체분리와 지하개발 주장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안 해도 되는 개발 주장에 현혹되지 말자. 도시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해법은 돈 덜 들이면서 작은 변화로 큰 효과를 내는 것이다. 분리보다 공존에서 답을 찾자.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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