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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전역 30㎞ 자동차 속도제한’ ‘초고층 개발 백지화 및 도시숲 조성’ ‘노상주차장 없애고 자전거도로·보도·녹도 조성’ ‘에어비앤비 3만호 매입 후 공공임대주택 전환’ ‘기존주택 매입 방식으로 사회주택 비율 25%까지 확대’ ‘집과 일터와 학교를 15분 안에 오가는 15분 도시 프로젝트’ ‘신축과 재개발보다 리모델링 우선’ ‘콘크리트 면적만큼 녹색공간 조성 의무화’ ‘생물서식처 보존 의무화’ ‘모든 공공건물 저녁시간 및 주말 개방 의무화’….
지난 6월28일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한 안 이달고 파리시장의 2기 시정운영 공약들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뛴다. 혁신을 넘어 혁명에 가까운 공약으로 당선된 시장도 대단하고, 이런 혁명가를 시장으로 다시 뽑은 시민들도 대단하다.
30㎞ 속도제한과 노상주차장 4분의 3을 없애겠다는 건 자동차가 아닌 사람의 도시로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선언이다. 200억유로 예산으로 에어비앤비를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과 배포도 상상을 초월한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어 운영 포기가 느는 시점에 나온 절묘한 공약이다. 굳이 새로 짓지 않고도 기존 자원을 활용해 공공임대를 충분히 늘릴 수 있음을 보여준 신의 한 수다.
공약집의 제목은 ‘파리를 위한 선언’이고 키워드는 ‘생태’와 ‘연대’ 그리고 ‘건강’이다. 공약들을 아우르는 이달고 시장의 메시지는 이렇다. “직면한 위기의 극복을 위해 ‘사회정의’와 ‘환경보호’ 두 가지 원칙을 정책의 중심에 두겠다. 그리고 경제와 효율을 이유로 생태를 포기하지 않겠다. 도시가 건강해야 시민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생태(ecology)’가 최우선이다.”
파리의 도시혁명은 이미 오래전 시작되었다. 2014년 시장 취임 후 6년째를 맞고 있고, 2001년부터 전임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과 함께 부시장으로서 시정을 이끌었으니 20년 지속해온 혁명이기도 하다. 베르트랑 시장의 핵심 공약은 자동차 도시가 아닌 사람의 도시 만들기였다. 2002년 여름 센강변 고속도로를 해변으로 바꾼 ‘파리 플라주’를 시작했고 몇 해를 반복하다 2010년에는 고속도로를 영구 폐쇄했다. 대중교통 트램 노선을 늘리고 2007년부터 공공자전거 ‘벨리브’를 도입해 자전거도시 만들기를 시작했다. 베르트랑 뒤를 이은 이달고 시장은 대기오염과 한판 승부를 벌였다. ‘미세먼지 많은 날 차량2부제’ ‘샹젤리제 차 없는 거리’ ‘자동차환경등급제’ 시행 등 업적이 적지 않다. 이달고 시장의 파리가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도시혁명은 파리 밖으로도 번질 조짐이다. 마르세유, 낭트, 스트라스부르, 릴에서도 생태와 환경을 강조하는 혁신 시장들이 당선되었다. 파리와 프랑스의 혁명적 변화가 한편 부럽고,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을 확대하자며 다시 개발시대로 되돌아가려 하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걱정이다. 과거로 회귀하지 말고 미래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도시혁명을 우리도 꿈꾸자. 개발주의에서 생태주의로! 약육강식 정글이 아닌 함께 사는 세상으로! 보행과 자전거와 대중교통 중심의 건강도시로! 어렵지 않다. 과반수 시민의 마음이 모아진다면. 그리고 분명하게 표현된다면. 그게 바로 혁명!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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