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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국회 회의실 벽면에는 ‘Team(팀) 국민의힘이 갑니다’라고 적힌 버스가 ‘출발’ 표지판 앞에 서 있는 그림이 있다. 그 옆엔 ‘다 태우GO(고) 정권교체!’라 쓰여 있다. 대선 주자들을 다 태운 경선버스가 정권교체를 향해 출발한다는 뜻이다. 그 전엔 충전된 배터리 그림이었다. 지난 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준석 대표와의 상견례에서 마지막 남은 칸을 채워넣었다. 윤 전 총장 입당을 ‘화룡점정’으로 보수 야권 대선 주자가 모두 경선버스에 탑승, 버스가 ‘완전 충전’됐다는 의미였다.
재기 번뜩이는 이들 그림과 경선버스의 실상은 달라 보인다. ‘완전 충전’ 이후 3주간 목도한 것은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제1야당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것들투성이다.
지난달 30일 윤 전 총장의 ‘기습 입당’ 이후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사이의 ‘투스톤’(준스톤+윤스톤) 갈등은 점입가경이었다. 양측은 물론 당 지도부, 다른 대선 주자들, 중진 의원들까지 참전하면서 경선버스는 출발도 하기 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들이 내뱉은 말들의 전쟁에 “멸치, 고등어, 돌고래는 한데 모을 필요 없다”(정진석 의원) 등 수중동물이 등장하더니, 하이에나, 멧돼지, 미어캣 등 육상동물까지 출현했다. 윤 전 총장 대선캠프 신지호 정무실장이 ‘탄핵’을 언급해 기름을 부었고, 이 대표가 윤 전 총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튀어나왔다.
대선 주자 토론회를 연기하기로 하면서 봉합되는 듯했던 내홍은 이준석 대표가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의 통화에서 했다는 발언으로 다시 폭발했다. 이 대표가 말한 “저거 곧 정리됩니다” 속의 ‘저거’가 윤 전 총장을 가리키는지, 윤 전 총장과의 갈등인지를 두고 폭로·난타전이 벌어졌다. 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당내 권력 투쟁에 제발 좀 몰두하지 말자”고 하자 일부 의원들이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치받았다. 과거 따라붙던 “봉숭아 학당”이 되살아난 듯하다.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사퇴하고 윤 전 총장이 대선 예비후보 비전발표회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내홍은 일단 잦아들었지만, 언제 다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주간은 국민의힘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무엇보다 중심을 잡는 사람이 없었다. “큰일 그르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왔지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큰일’을 위해 야권 전체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야 할 제1야당 대표는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기는커녕 사사건건 논쟁을 즐기는 듯했다. 대선 주자들은 경선버스의 ‘운전대’를 노리거나 낮은 관심을 끌어올리려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일부 중진들도 유력 대선 주자들 뒤에서 당대표를 흔들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저러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교체론’이 여전히 여론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반문재인 정서에 기댄 보수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애초 권력기관 수장의 정치권 직행에 따른 중립성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준비 부족 등 자질 논란을 피해 가는 ‘전가의 보도’가 정권교체론이다.
하지만 자기 혁신 없이 정권교체론이라는 선거구도에만 안주하는 정치, 손 안 대고 코풀기식 정치가 얼마나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일지 의문이다. 이런 반대의 정치는 자기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옆집 가게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 찾아온 손님에게, 이 동네엔 그 가게 말고 우리밖에 없으니 그냥 먹고 가라는 배짱 영업이다.
경선버스에 모두 올라탔다고, 배터리가 완전 충전됐다고 자랑할 게 아니다. 버스가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도록 버스 부품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뭘 할지도 제시해야 한다. 옆 가게보다 더 나은 가게가 될 수 있을지 충분히 설명하고 제대로 된 메뉴를 내놓아야 한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퇴임하면서 “국민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고 했다. 대선이 6개월여 남았다. 국민의힘을 띄운 민심의 강물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 3주간 국민의힘에서 쏟아진 무수한 말 중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게 있다. “뭣이 중헌디.” “한 방에 훅 간다.”
김진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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