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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도로에서 차가 막히기도 한다. 앞차의 브레이크 한 번이 교통체증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다. 흐름이 유지되려면 탄탄한 도로설계와 정밀한 신호체계가 필요하다.
시장 역시 흐름이다. 때로는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24번에 걸친 현 정부의 부동산대책 ‘신호등’ 개편에 그나마 굴러가던 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코로나19 위기에 푼 유동성에 집값은 ‘과속’하며 상승했고, 세입자보호 ‘파란불’을 켰더니 되레 전세시장이 멈춰 섰다. ‘차 막힌다’ ‘저 차만 과속하냐’ 여론의 아우성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신호체계를 발작적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은 부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말한 게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 시장에서 정부의 ‘신호등’은 씨알도 안 먹힌다. 전세대책을 내놨는데 전국 전셋값은 또 올랐다.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올리면서 내 집 마련이 멀어진 800만 무주택자는 망연자실이다. 몸에 좋다는 건강보충제를 마구 섞으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떠오른다.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으면 변명의 충동은 커진다. 자신의 선량함에 티끌만 한 의심도 없을 때 더 그렇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진심을 구차하게 호소했다. 지난 10월 예비 세입자들이 전셋집 앞에 줄짓자 김 장관은 ‘싸게 나온 물건이라서’라고 설명했지만, 예외적 사건이 아닌 징후적 사건임을 그는 읽지 못했다.
투기광풍이 몰아치던 1990년 봄, 서울 전셋값이 한 달 새 3배나 뛰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17명 중 한 명은 이런 유서를 남긴 바 있다. “경제 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정책에 가난한 사람들의 목이 더 이상 조이지 않게 하소서.” 3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쏟아낸 진단의 부작용은 이제 앞으로 2년 뒤 신규 공급이 풀릴 때까지 버티는 것 말곤 뾰족한 해결책이 안 보인다. 대개 사람은 나쁘다는 평보다는 무능하다는 평을 듣는 쪽을 택하지만, 공직자의 무능은 민생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기에 그 자체가 ‘악’이다.
정책이 꼬이기 전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정권 초부터 주택정책의 컨트롤타워였던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김 장관은 ‘역대 최장수 국토부 장관’ 기록을 세운 뒤에야 3년 반 만에 경질됐다. 현 정부의 잘못이 크지 않다는 인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주 새 국토부 장관으로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내정됐지만 큰 틀의 변화는 난망하다. 그의 시각은 기존 정부 정책과 거의 동일해 새로운 진단과 해법은 먼 데다, 추가 공급책은 지난 8월 이후 이미 ‘마른걸레 쥐어짜기’ 하듯 대부분 나온 상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민심은 싸늘하게 식었고 대통령 지지율은 40%대가 붕괴했다. 규제를 퍼붓고도 집값을 못 잡은 참여정부의 쓰디쓴 악몽은 또다시 반복됐다.
집을 못 가진 이들이 아우성인데, 가진 이들의 볼멘소리도 드높다. 집값 급등에 종합부동산세 대상과 금액이 크게 늘어난다며 ‘종부세 폭탄론’을 주장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서울 강남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무직 은퇴자의 하소연이나 종부세가 7배나 올랐다는데 알고보니 10만원에서 70만원이 됐다는 경우들이 과연 일반적인가.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국제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낮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1%)을 밑도는 14위다. 저출산·고령화를 비롯해 예고된 미래 충격에 대비하려면 세수 방파제를 튼튼하게 보강해야 하지만, 사회 전체의 공익보다 독자 계급의 사익이 우선하는 주장이 난무한다. 독하면 독할수록 클릭수가 많아지는 요즘 뉴스의 속성은 애써 기억해야 할 국가 공동체라는 가치를 지워버린다.
이렇게 또 한 차례의 부동산 대란은 ‘믿을 수 없는 정부와 공공영역’이라는 흉터를 다시 한번 한국인의 집단의식에 남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 소득 및 자산의 상위계층을 차지하는 당국자들은 실수요자들만큼 문제 해결에 절박하지 않다는 불신을 받는다. 코로나19 터널을 지난 이후 한국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충격에 못지않은 자산 및 일자리 양극화를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부동산으로 분열된 사회를 어떻게 다독이고 치유할지 매우 걱정된다.
최민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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