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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당신처럼 살면 얼마나 많은 지구가 필요할까?’ 얼마 전 신문사 후배가 보내준 ‘생태발자국 계산기’ 웹페이지의 제목이다. ‘육식을 얼마나 하는가’ 등 의식주, 이동수단, 전기 이용 등과 관련한 10여개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그랬더니 ‘지구 2개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5.5t으로 계산한 데 따른 것이다. 웬만하면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하려 하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해왔다고 생각한 나로선 놀라운 수치였다. 그 후배도 내가 보기에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지구 2.9개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비행기를 1년에 몇시간 타는가’라는 질문에 0시간을 기입해도 이 정도인데 코로나19가 없는 때라면 지구 10개는 필요하다고 나오지 않았을까.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의도는 분명할 것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라도 이른바 선진 물질문명 속에 사는 개인이 자극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상기후를 겪으며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수치로 제시될 때는 또 다른 감각을 갖게 된다.

육식 자제, 플라스틱 소비 감축, 플로깅(쓰레기 주우며 조깅)…. 주어진 여건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끝없이 소비 수요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문명 속에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 가령 ‘먹는 음식 중 가공되지 않거나 포장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0에 가깝다고 답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타인과 소통하려면 스마트폰 충전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사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가 소요되는 서버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차 역시 어딘가에서 생산된 전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근대적 삶을 지속하는 한 머지않은 미래에 파국을 피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19세기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아야 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개개인이 윤리적 소비를 하는 것을 넘어 기업과 정부에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소중한 이유이다.

동시에 나는 고인이 되신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과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일화를 생각한다. 2000년대 초 김 선생이 책 소개 TV프로그램 <느낌표> 제작자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있다. 방송사는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권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소개하려 하니 책 20만권을 미리 준비하라고 했다. 허락을 구한다기보다 통보에 가까웠다고 한다. 작은 출판사로서는 책이 방송에 소개되면 더 많이 팔릴 것이고, 돈 걱정 않고 녹색평론 잡지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김 선생은 거절했다. 방송사는 당혹스러워하며 저자에게 접촉했다. 권 선생도 거절했다. 권 선생의 거절 이유는 이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없애려는 것입니까.”

김 선생은 후일 지인들에게 말했다. “권 선생님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당장 출판사는 돈을 벌겠지만, 늘어난 물량을 다룰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할 텐데, 시간이 지나도 그게 유지될 것이란 보장이 없고, 언젠가 책이 안 나갈 때가 올 텐데, 그땐 또 직원을 해고해야 할 것 아닌가요. 몸집이 너무 커져버리면 시장 논리에 타협할 일도 많아지고, 녹색평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는 상황도 올 것 아닙니까.”

공직자들까지 사전 개발정보를 얻어 임야, 농지를 사서 시세차익을 얻으려고 혈안이 된 세상 분위기 속에서 두 선생의 ‘거룩한 바보’ 같은 모습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까지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혹은 부유한 사람들 못지않게 소비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 삶을 살아야 할까. 모두 그렇게 산다면 이 지구가 언제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을까.

톨스토이 단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서 파홈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원하는 땅을 괭이로 표기하고 출발지에 돌아오면 그 땅을 모두 갖게 해주겠다는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숨이 가빠도 뛰고 또 뛰었다. 파홈은 해 지기 전 출발지에 돌아왔지만 기진맥진해 곧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그는 그 자리에 묻혔다. 정작 그에게 필요한 땅은 한 평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6월25일 김종철 선생의 1주기를 앞두고 다시 생각해보는 질문이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손제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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