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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향교에서 한문을 배우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말이 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의 첫 구절 “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내 몸을 기르시니(父生我身 母鞠吾身)”. 어머니가 나를 기르신 것은 알겠지만,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다니? 연세 지긋한 훈장은 ‘부모가 한 몸’이라는 취지로 말한 뒤 ‘이해 안 되면 그냥 외우라’고 호통을 쳤다.
임신중단(낙태) 관련 법 개정안 입법예고 논란을 보며 이 일화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정부의 법 개정 제안은 내용과 과정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 법무부 등이 지난 7일 내놓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요지는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주수를 나눠 여성의 결정만으로(14주 이전) 혹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예외적으로(24주 이전)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근거조항을 두는 것이다. 14주 이후 처벌 제외 요건에 여성의 건강, 성범죄 등 현행법의 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이유’를 추가했다. ‘아버지’의 동의 조항도 삭제했다.
일견 임신기간 내내 여성을 처벌 가능하도록 하는 등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현행법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정부는 헌재 재판관 4명의 헌법불합치 의견을 최소한 따랐을 뿐, 조금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3명 재판관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도 보장하지도 않는다’ ‘낙태죄 조항에 의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이 실효적으로 달성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은 반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임신중단을 여전히 범죄로 남겨둔 것이 유감이다. 실제 임신중단 건수에 비해 ‘낙태죄’로 처벌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이 조항은 실효성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를 보면 2008년 전체 24만1411건의 임신중단 중 4건, 2009년 18만7958건 중 4건, 2010년 16만8738건 중 7건만 ‘낙태죄’로 기소됐다. 헌재도 밝혔듯, 처벌 사례 대부분은 헤어진 ‘(태아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 혹은 괴롭힘, 가사·민사 분쟁에서의 압박 수단으로 악용된 것들이었다.
임신중단을 놓고 인생을 건 고민을 하는 여성이 처벌 우려 때문에 임신중단을 단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 규정 때문에 여성들이 신체적, 심적 고통에 더해 ‘죄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취약한 지위에 있는 청소년, 장애인들은 주변의 정신적 지지나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 딱지는 임신중단을 다른 의료행위들과 다르게 취급하게 해 음성적 불법시술을 조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사문화된 낙태죄가 정부 개정안으로 오히려 부활됐다’고 반발하는 것도 이런 점들 때문이다.
정부는 ‘낙태죄’를 없애면 임신 후반부 태아의 성별이나 기형을 이유로 생명권을 침해하는 법적 공백이 생긴다는 논리를 든다. 하지만 임신중단은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일어나지 않고 대부분 20주 전에 이뤄진다. 주수가 길어질수록 임신중단은 여성의 몸에도 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려는 여성은 거의 없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한다면, 임신중단에 형벌적 제재를 남겨놓기보다 국가가 성교육과 상담을 강화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하며, 여성이 ‘독박육아’를 하는 구조를 고쳐나가는 일이 더 실질적이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선진국에서의 임신 주수 구분은 처벌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시의적절한 사회서비스를 실시하는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반 동안 제대로 된 토론도 없었다. 정부는 공청회 한번 없이 비공개로 논의를 진행했고, 헌재가 시한으로 제시한 2020년 12월31일을 눈앞에 두고 개정안을 내놨다. 이제라도 토론이 이뤄지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사안은 아일랜드처럼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의회를 열어 논의해볼 만한 사안이었다.
백번 양보해 임신중단이 ‘범죄’라면 그것은 여성만 짊어질 부담이 아니다. 임신에 필수적이고 근원적인 씨앗을 제공한 남성 ‘공범’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국가가 남성 ‘공범’을 처벌할 의지가 없다면, ‘죄’를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만으로 ‘낙태죄’ 비범죄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옛 어른들도 내 몸을 낳은 것은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손제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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