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경우도 있다.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중도금까지 받은 집주인이 더 좋은 조건을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마음을 바꾸면 범죄다. 중도금을 돌려주고 계약금 두 배로 물어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이 배임죄로 처벌하기 때문이다. 이 판례를 바꾸려 대법원이 2018년 전원합의체를 열었다가 판례를 유지했다. 반대의견은 형법에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처벌이고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고 했다. “이미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서는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는데, 부동산이라고 차이를 둘 이유가 없다. 민사상 채무불이행의 문제로 처리해 이행 불능에 따른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면 될 사안으로 형벌 처벌은 옳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불법행위가 모두 처벌 대상은 아니다. 이를 법의 공백이라 부르지도 않는다. 국가 형벌권을 얼마나 작동시킬지는 사회적 결단이다. 이 사회적 결단은 복합적으로 결정된다. 여론의 요구로 국회가 입법을 해도 그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성폭력 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이 2013년 모두 삭제됐다. 이전까지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검찰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친고죄 폐지와 무관하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하는 일은 계속됐다. 이를 반영해 검찰이 기소유예를 했다. 2013년까지 28.5%이던 성폭력 범죄 기소유예가 2014년 44.7%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기소유예 증가에는 유죄 판결을 받은 모든 사람을 신상정보 등록해야 하는 부담도 영향을 끼쳤다고 추지현 서울대 교수는 설명한다.
부당함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형사 처벌이나 높은 양형부터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혐오표현을 처벌하라는 목소리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혐오표현 규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혐오표현을 깊이 연구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도 처벌에는 부정적이다. “형사범죄화는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혐오표현을 위축시키는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자칫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누군가를 김치녀라고 조롱해도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것이 아니어서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혐오표현을 합리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2019년 근로기준법에 만들어졌다.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이후 최근까지 고용노동부가 접수한 사건 가운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보낸 사례는 0.4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가운데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사건은 더 적을 테다. 이 자료를 언론에 돌린 용혜인 의원은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공동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그 법안이 통과된다면 검찰 송치와 유죄 판결 비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논란을 거듭하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경영단체는 과잉입법이라 주장하고 노동단체는 과소입법이라고 맞선다. 경영단체는 조항이 너무나 포괄적이라 문제라고 지적하고, 노동단체는 그 정도는 해석으로 보충이 된다고 반박한다. 노동단체 주장대로 직권남용을 비롯해 수많은 처벌 조항이 모호한 게 사실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검찰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발판이 된 것도 사실이다. 어느 주장이 타당한지 시간이 드러낼 테다. 결론이 어느 쪽이든 처벌만으로는 중대재해를 없애기 어렵다. 이제 형사 처벌로 해결되는 사회문제는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