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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도덕성과 경륜이 유권자들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런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짓는 다른 요소는 공약이다. 그러나 공약의 질은 미흡하고, 일부 외교·안보 정책을 제외하면 경제·사회 분야에서 후보별 공약 색채도 뚜렷하게 구분되질 않는다.
부동산 문제만 해도 현 정부와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공급 물량 숫자놀음과 세금 깎아주기 경쟁뿐이다. 보유세를 높였다 낮췄다, 투기지역으로 묶었다 풀었다, 대출규제를 강화했다 말았다를 밥 먹듯 해 온 결과가 오늘날 부동산 시장 난맥상의 원인임에도 차기 정부에서도 냉·온탕식 정책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지속 가능한 국가재정 전략의 수립은 지출 구조조정 같은 지엽적 방안에 머물러 있을 뿐 증세는 고사하고,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조차 오간 데 없다.
유권자들은 공약을 통해 나라의 미래상을 보며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한다. 하지만 자질과 능력은 성에 안 차고 공약으로 눈을 돌려도 헷갈리기만 할 뿐이어서 유권자들은 누가 국정운영 능력을 갖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표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이었든, 결과적으로 막대한 폐해를 끼쳤든 간에 그래도 역대 대선에서는 치열한 논쟁을 부르는 후보들의 그랜드 공약들이 있었다. 행정수도 건설을 통한 국토 균형발전(노무현), 한반도 대운하(이명박), 경제민주화(박근혜), 소득주도성장(문재인)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공약들의 배후에는 후보와 오래 교감한 브레인이 있었다. 노무현·김병준 교수, 이명박·백용호 교수, 박근혜·김광두 교수, 문재인·김상조 교수 등의 조합이 떠오른다. 평소 활발한 시민운동과 강연 등으로 인지도를 갖춘 이들 경제교사는 대선 과정에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후보의 정책 컬러를 제시했다. 화두를 던지고 공론의 무대조차 만들지 못하는 이번 대선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대선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초라하다.
현재 이 후보와 윤 후보 캠프에서 정책을 매만지고 있는 사람들이 족히 수백명은 될 듯싶다. 전·현직 정치인, 관료 등을 제외하면 이 후보 캠프에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진보적 성향의 학자, 윤 후보 캠프에는 시장 중시론자들이 공약 설계에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핵심 브레인이나 키맨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공약에 대해 후보들의 설명이 좀 더 필요한데, 이게 잘 안 된다면 공약에 관여하는 핵심 인사들이 이런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집권 후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은 후보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사들의 몫이기도 하다.
국정의 성패는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호흡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어떤 팀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에서 후보들이 섀도캐비닛(예비내각)을 내놓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핵심 자리 몇 곳이라도 어떤 인물들이 후보에 올라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차기 정부의 움직임을 대략이라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선거일에 유권자들은 투표용지에 이름이 올라 있는 후보 중 한 사람을 택하지만, 이는 국정을 함께 운영할 세력을 선택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 후보의 경우 이미 30·40대 장관을 적극 기용하겠다며 가능한 분야로 과학기술·환경·에너지 등의 영역을 언급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정치에 입문한 윤 후보의 경우 어떤 인물들과 국정을 이끌어갈지 궁금해하고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구도대로라면 누가 당선되든 코로나19 이후 대전환기의 국가를 끌고 나가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합정부 구상을 통한 인물 제시라면 더 의미가 클 것이다.
미국발 긴축 움직임 속에 금융시장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깎아먹고 있는데 통상 정권교체기에는 생활물가가 더 들썩거리기 마련이다. 오는 3월 말 임기가 종료되는 임기 4년의 한국은행 총재 인사도 서둘러야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설을 증폭시킬 수 있다. 아무쪼록 누굴 찍을지 판단의 잣대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거를 둘러싼 유권자들의 좌절과 한숨이 더 이상 위험 수위에 다다르지 않도록 후보와 주변 인사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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