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텃밭의 작물들이 심상치 않다. 애써 키우는 20여가지가 하나같이 부실하다. 감자나 옥수수·열무·오이는 물론 상추·루콜라 같은 연한 채소들이 더 그렇다. 가뭄 탓이다. 예년보다 뜨거운 날씨에 비마저 내리지 않아 다들 축 늘어졌다. 목마르다고 아우성치는 듯한 모습이 안타깝다. 작은 텃밭을 여가로 가꾸는 나도 이런데, 생계가 달린 농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봄비는 쌀비’라는 속담이 있다. 농사가 시작되는 봄철의 비는 풍년을 약속하는 비로 쌀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올해는 농부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그 쌀비가 내리지 않았다.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하천에는 물 대신 풀이 자란다. 작물처럼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간다. 저수지 바닥처럼 가슴이 쩍쩍 갈라지고 있다. 물가 폭등 속에 치솟은 농자재 값, 만성적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민들이다. 가뭄은 설상가상이다. 주름은 늘어나고 한숨은 더 깊어진다. 정부의 농정(農政) 홀대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뿌린 만큼만 거둔다’며 욕심 부리지 않는 농심은 기댈 곳이 없어 하늘을 찾는다. 남해안 욕지도부터 강원 영월 등 전국에서 기우제가 열린 까닭이다. 비 올 때까지 올린다는 ‘인디언 기우제’까지 생각할 만큼 농심은 간절하다.
가뭄은 전국적으로 심각하다. 기상청 등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전국 누적 강수량은 167㎜다. 예년 평균 341㎜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 한 달간 누적 강수량은 5.8㎜로 평년 강수량 103㎜의 6%에 불과하다. 마늘이나 양파·감자·보리 등 밭작물에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생산량 감소로 농민들은 수입이 급감하고 있다. 도시민들도 가뭄의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다. 월급 빼고 모든 게 오른 고물가 시대에 농산물 값 폭등을 걱정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가뭄 피해 대책을 주문했다. 관련 부처들은 3~4일 잇달아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가뭄은 이미 지난겨울부터 심각하지 않았던가. 강수량 부족에 따른 가뭄은 천재지변이다. 그러나 가뭄의 피해를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인재, 정부의 분명한 실책이다.
마침 전국적으로 오늘내일 비 예보가 있다. 농심과 농작물의 타는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시원 달콤한 단비이기를 고대한다.
도재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