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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지으면 그들이 올 거야(If you build it, they will come).” 미국영화연구소(AFI)에 따르면 역대 미국 영화 통틀어 39위의 명대사라고 한다. 1989년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에 나온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주인공 레이 킨셀라가 어느 날 계시처럼 듣는 말이다. 야구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여의고 옥수수 농사를 하던 레이는 이 말을 듣자 옥수수밭에 야구장을 짓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꿈이 어린, 야구장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옥수수밭 야구장에 아버지의 우상이던 야구 선수들이 유령으로 나타나 경기를 펼친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흘러간다.
영화는 옥수수 주산지로 유명한 미국 아이오와주의 시골마을 다이어스빌이라는 곳에서 촬영됐다. 주민 40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의 옥수수밭에 야구장 세트를 세웠다. 영화는 1990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유명해졌지만 촬영 현장은 관광지로 뜨지 못했다. 십중팔구는 어딘지도 모르는 미국 중부 오지의 광활한 옥수수밭에 덩그러니 세트만 남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 유령들이 뛰었던 그 ‘꿈의 구장’에서 실제 야구 경기가 열린다. 동네 야구가 아니라 미국 프로야구 공식 경기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13일 다이어스빌에서 정규시즌 경기를 벌인다. 화이트삭스는 영화 속 레이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팀이다. 32년 전 영화의 상상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경기는 세트장에서 600여m 떨어진 근처 옥수수밭에 따로 지은 8000석 규모의 임시 경기장에서 열린다. 작은 세트장에서 경기를 하면 사방의 옥수수밭으로 날아가는 공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아무튼 메이저리그는 야구장을 지었고, 현실의 스타 선수들과 야구팬 8000명이 오게 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6년부터 ‘꿈의 구장 경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미국 옥수수재배협회를 파트너로 삼아 ‘옥수수밭에서 사상 처음 열리는 프로스포츠 이벤트’임을 부각한 것도 눈길을 끈다. 꿈을 꾸면 이루어지게 만드는 메이저리그의 기획력이 대단하다. 마법 같은 ‘꿈의 구장’에서 진짜 야구 경기를 실현한 것도 또 한 편의 영화 같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올림픽, 머리 모양은 선수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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