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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망자에게 갖추는 예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곧잘 보는 것이 ‘대통령 ○○○’라고 쓴 조화이다. 대통령은 국무총리나 비서실장·수석비서관·장관을 국내외에 보내 조전이나 조의를 전하고,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 직접 빈소를 찾는 일은 역대 대통령마다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 흔치 않음은 각별함의 동의어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술 한 잔 올리고 싶다”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조문했다. 빈소를 찾은 것은 2019년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 이후 두번째다. 그해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때는 북유럽 순방 중에 조전을 띄우고, 귀국 직후 동교동 사저를 찾았다. 모두 생전에 연이 깊었던 통일·민주·인권·여성 운동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문은 4차례 있었다. 2013년 국회의원 시절 후원회장이던 남덕우 전 총리, 2015년엔 사촌언니이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부인 박영옥씨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퍼스트레이디 때부터 알고 지낸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국장도 직접 참석했다. 대통령의 해외 조문은 1963년 J F 케네디 미 대통령(박정희 당선자 시절), 2000년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김대중)에 이어 세번째였다. 조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많았다. 그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재계(박태준·이맹희·구평회), 종교계(하용조·옥한음 목사와 지관 스님),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과 조영식 경희대 설립자, 소설가 박경리씨 등 사회 각계 인사들을 두루 조문했고, 대선 때 도와준 김덕룡 전 장관의 모친상가도 찾았다.
대통령의 조례(弔禮)는 저마다의 특징과 정치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이 비서실장이나 조화를 보낸 재계·언론계 빈소를 자주 찾았고, 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 인연을 중시했다. 문 대통령은 조문 자체가 논란이 된 JP에겐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박원순·백선엽·이건희 빈소엔 조화를 보냈다. 대통령에게 통일을 당부하는 유품(영상메시지·책·손수건)을 처음으로 남기고, 특별히 세월호·산재 유족과 해고노동자 김진숙씨를 살펴달라고 한 백기완 소장은 대통령 조문사(史)에서 또 하나의 의미와 새로움을 더했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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