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은 걷는 사람의 것이다. 내가 걸어야 내 길이 된다. 누가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 스스로 걸어야 한다. 눈앞에 길이 나타나면 그냥 따라가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걷는다. 세계적인 도보여행가로 베스트셀러 <나는 걷는다>를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60대에 터키 이스탄불부터 중국 시안에 이르는 실크로드 1만2000㎞를 4년여에 걸쳐 혼자 걸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걸었던 길이다. 그는 그 먼 길을 왜 걷는지 애써 말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만 가고, 서두름 없이 느리게 걷는 모습을 몸으로 보였다. 누구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이다.

걷기를 예찬하는 말도 많다.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루소는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말했고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 존재한다”는 말을 남겼다. 근래의 한 프랑스 학자는 “걷기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길을 되찾아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굳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며 건강을 찾을 수 있기에 걷기에 나서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걷고 싶고 걸어볼 만한 길이 서해안에 새로 열렸다. 엊그제 개통한, 전남 해남 땅끝에서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1800㎞를 잇는 ‘서해랑길’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를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000리로 잡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나왔다는데 구불구불 서해안을 따라 109개 코스가 이어진 서해랑길은 4500리를 넘는다. 2016년 동해안 750㎞의 ‘해파랑길’, 2020년 남해안 1470㎞의 ‘남파랑길’에 서해랑길이 연결되며 국내 해안길이 모두 이어졌다. 내년에 강화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를 잇는 ‘DMZ 평화의 길’까지 열리면 총 4544㎞의 ‘코리아 둘레길’이 완성된다.

서해랑길은 서해안의 갯벌과 낙조, 푸른 바다 위 섬마을 풍경과 함께한다. 걷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길이 세상에 많다고 한다. 욕심내지 말고, 서해안의 정취를 느낄 짧은 코스 하나부터 골라보면 어떨까. 날씨 좋은 날,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 해안길을 느리게 걸으며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다.
차준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