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성화(이콘)나 불교 불화는 그림으로 그려진 성경·불경이다. 글 모르는 이들을 위해 경전 내용을 시각화해서다. 경전에 화가의 예술성까지 곁들여지면서 신앙과 영성은 더 북돋워졌다. 성당과 사찰이 건축물로 구현한 성경·불경인 것처럼 성화와 불화도 같은 이치다. 인류의 첫 문자인 상형문자 이전의 그림문자, 역사시대 이전 선사시대 동굴벽화·암각화에서 보듯 그림은 문자보다 인간과 더 오래 함께했다.
그림책은 글보다 그림이 더 핵심이다. 문자 대신 선과 색, 면, 구도 등으로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읽는 책’을 넘어 읽고 또 ‘보는 책’인 것이다. 첫 그림책은 1658년 보헤미아(현 체코 일대)의 유아교육 사상가인 코메니우스(코멘스키)가 펴낸 <세계도해>로 여겨진다. 그림책은 글을 모르는 영·유아, 어린이들에게 감각과 인지·언어·정서 등을 발달시키는 중요한 교육 매개체다. 한때 아동문학에서 비주류였지만 이젠 당당한 독립 장르다. 그림들도 예술혼이 담긴 작품으로 인정받아 원화 전시회도 자주 열린다. 최근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많다.
그림책 작가 이수지씨가 ‘아동문학 노벨상’이라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다.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기리려 제정된 상은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가 글·그림(일러스트레이터) 작가 각 1명을 2년마다 선정해 시상한다. 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대상으로 해 가장 받기 어려운 그림책상으로 꼽힌다. 이 작가는 최근작 <여름이 온다>로 지난달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되는 등 그동안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이 작가의 안데르센상 수상은 한국 그림책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에서 더 빛난다. 문학과 아동문학, 순수와 비순수라는 갈라치기의 틈바구니에서 작품으로, 작가로 스스로의 위상을 찾아 더욱 그렇다. 문단 안팎 모두가 축하할 만한 아동문학, 그림책계의 경사다.
최근 박상영·정보라 소설가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나란히 올랐다. 국제 무대에서 ‘문학 한류’ ‘K아동문학’의 기대감을 높여준다.
도재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