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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당헌이나 기업·협회·사회단체·법인의 정관에 ‘위촉할 수 있다’고 둔 자리가 있다. ‘꼭’은 아니고 십중팔구는 둘 수 있다고 열어놓은 직책, 고문(顧問)이다. 국어사전에는 ‘전문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자문에 응해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하는 직책이나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상임·비상임으로 갈리고, 명예직도 있고, 조직에 따라서는 변호사·회계사·노무사 같은 전문직 앞에 ‘고문’을 붙이기도 한다. 때로 동창회·종친회나 작은 골목 모임에도 고문이 있다. 예우하거나 관행이거나 필요해서 모실 사람에게 주는 특전과 명함이다.
정당사에서 고문은 명예로운 ‘고위’ 호칭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전직 당대표 및 그에 준하는 원로’ 9명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고, 14명이던 고문(당 원로 및 사회지도급 인사)을 다시 위촉 중이다. 이 대표가 올 1월 총리를 그만두고 당에 복귀할 때 직책도 상임고문이었다. 4년 전 민주당을 떠난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도 정가에선 여전히 ‘권 고문’으로 불린다.
기업이나 단체·법인에선 물러난 조직의 장이나 영입인사를 고문으로 곧잘 앉힌다. 업무 연속성과 예우를 위해 1~5년씩 관례화한 곳도 있다. 종종 시끄러워지는 것은 혈세를 쓰는 공기업이다. 올 국감에서도 역대 금융결제원장 7명이 그만두고 1~3년씩 월 고문료 500만원, 업무추진비 190만원, 차·유류비와 부부 건강검진비를 지급받은 일이 도마에 올랐다. 20년째 후임자가 위촉하고 자문은 월 1~3건에 그쳤으니 ‘셀프 위촉’과 다를 바 없다.
근래 고문이 입방아에 오른 것은 5000억원대 펀드 사기를 일으킨 옵티머스 사건이 터지면서다. 사모펀드 운용업체 고문단에 ‘거물급 모피아’인 이헌재 전 금융위원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양호 전 나라은행장 등이 월 수백만원씩 고문료를 받고 포진한 게 알려졌다. 여러 회의록·SNS엔 고문단이 사업을 조언하고, 사람을 이어주고, 로비스트로 나선 정황도 보인다. 사모펀드 운용자가 금감원 갈 때 ‘VIP 대접’도 받게 해줬다는 것 아닌가. 사실이라면 ‘이해동맹체’ 고문단이다. 힘 있고 연줄도 넓은 고문들이 얼마나 사모펀드의 바람막이와 날개가 됐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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