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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갓진 일요일 오전, 온 가족이 TV 앞에 둘러앉아 ‘본방 사수’했다. 따~다다단, 따~단. 귀에 익은 느릿한 소프라노 색소폰 주제곡이 흐르면 모두가 TV 속 양촌리 마을로 들어갔다. 김 회장댁, 일용네, 응삼이, 복길이, 금동이…. 그리고 약방에 감초 같은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왔다.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정겹고 푸근했다. 도시 사는 시청자도 양촌리 사람들을 한동네 이웃처럼 친근하게 여겼다. 1980년 10월21일 첫 회부터 2002년 12월29일 마지막 회까지, 22년2개월여 동안 총 1088회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얘기다.
<전원일기>는 요즘에도 케이블TV 채널 곳곳에서 자주 나온다. 오래전 드라마라 화질이 칙칙한데도 시청률이 낮지 않다고 한다. 추억과 향수를 그리는 장년층 ‘전원일기 세대’뿐 아니라 젊은 층 자녀 세대도 즐겨보고 있어서다. “우연히 엄마와 함께 보기 시작했다가 내가 푹 빠졌다”는 젊은 층의 반응이 적지 않다. 젊은이들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옛날 명작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전원일기>는 최근 국내 한 OTT의 인기 드라마 순위에서 10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말하자면, ‘옛드(옛날 드라마)의 역주행’이다.
비단 <전원일기>뿐 아니다. 젊은 층의 복고 열풍과 더불어 <야인시대> <태조 왕건> <허준> <용의 눈물> 등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인기 드라마들의 ‘다시보기 정주행’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야인시대>는 최근 이를 패러디한 웹 예능 프로그램 <야인 이즈 백>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외에 2030세대가 ‘추억의 명작’으로 꼽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드라마도 상당수다.
젊은 층이 옛날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는 겪어보지 못한 옛날 감성을 느껴서다. <전원일기> 시청 소감 중에 “매번 해피엔딩이라 맑은 공기를 마시는 느낌”이라며 “지금 봐도 힐링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복수·불륜·범죄가 얽히고설키는 요즘 드라마에는 없는 감성을 본 것이다. <전원일기>가 다시 뜨는 것은 지금 드라마에 대한 불만으로 읽힌다. 드라마라도 자극적이지 않은 스토리로, 담백하고 정겨운 일상을 그려주기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 같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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