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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24일 밤 10시30분. 구자춘 서울시 경찰국장(당시 32세)이 평복 차림으로 남대문로 번화가에 나섰다. 시민 불편을 직접 보고 겪겠다며 통행금지 직전 택시잡기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진땀 빼고 허탕 치는 15분 사이에 택시 30대가 훌쩍 지나쳤다. 어쩔 수 없이 경찰차를 불러 무교동길로 옮겼더니 요행히 택시 한 대가 섰다. “어디 가십니까?” “돈암동…” “아이고 안 되겠네요. 차고가 영등포입니다” 차는 홱 달아나버렸다. 서울 치안 총책임자인 그의 암행 민정시찰은 6번의 승차거부와 2번의 승차 후 강제하차로 끝났다고 한다. 당시 경향신문 사회면의 현장 기사 내용이다.
승차거부는 택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대절이 아닌 길거리 영업을 처음 시작한 회사 ‘경성택시’가 1919년 12월 등장한 이후 1950~60년대 국산 ‘시발(始發) 택시’와 새나라자동차 대중화, 1962년 서울 택시 미터기 장착 완료 등을 거치면서 택시는 1970년대부터 시민의 발로 자리 잡았다. 전차·버스에 이어 주요 교통수단이 된 1960년대 들면서 택시의 바가지요금, 승차거부 단속이 시작됐다. 이후 지금까지 때마다 단속을 하는데도 손님을 상대로 웃돈을 불러 챙기거나, 이에 응하지 않으면 승차거부를 하는 식으로 승객을 골라 태우는 횡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요즘 택시는 길거리에서 손을 흔들어 잡지만은 않는다. 손안의 스마트폰 앱을 클릭해 택시를 부른다. 플랫폼택시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택시가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승차거부 불법행위를 집중단속하기 위해 카카오택시의 승객 골라 태우기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단거리 승객의 콜을 받지 않고 장거리 손님만 받는 행태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목적지가 가까우면 불러도 대답 없이 소비자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카카오택시의 운영 실태를 낱낱이 밝히기 바란다.
앱을 통한 승차거부도 당연히 위법이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승차거부와 같은 폐해를 없애고자 플랫폼택시가 도입됐는데 골라 태우기를 조장한다면 말이 안 된다. “따블, 따따블”을 외치며 택시를 잡던 때는 애환이라도 있었다. 시민보다 돈벌이를 앞세운다면 카카오택시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그린란드 디스코 섬 근처 빙산들이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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