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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효과’란 말이 있다. 같은 업적을 쌓아도 여성이 남성보다 과소평가돼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경향이다. DNA의 이중 나선구조 해명은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업적이 크지만 노벨상은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이 받은 게 대표적이다. ‘퀴리 부인’으로 불린 마리 퀴리(1867~1934)는 마틸다 효과를 극복한 상징적 여성 과학자다. 남편은 유명한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다. 이 부부는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다. 원자력 연구의 새 시대를 열었고, 1903년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폴로늄’과 ‘방사능’이란 이름을 작명한 마리는 남편이 사고로 타계한 뒤에도 연구를 지속해 1911년 노벨 화학상도 수상했다.
“인류를 생각하고 과학을 사랑하는” 같은 꿈을 꾼 부부의 삶은 오로지 연구였다. 과학자적 열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며 연구에 매달렸다. 당대 최고로 값비싼 라듐을 다른 이들의 연구를 위해 기증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마리를 “유명한 사람들 중 명예 때문에 순수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퀴리 부부는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린 알베르트 슈바이처·헬레네 브레슬라우 부부 등과 함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부부다.
퀴리 부부가 느닷없이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지난 4일 호명됐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의혹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공방 속에서다. 야당은 갖가지 의혹으로 ‘낙마 1순위’로 꼽힌 임 후보자와 그 배우자의 논문 표절, 제자의 논문을 활용한 ‘논문 내조’ 등의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그때 여당 의원 입에서 “퀴리 부부가 함께 협력해 좋은 성과를 냈다” “남편과의 연구실적을 인정하지 못하면 마리 퀴리가 살아와도 장관에 임명되지 못할 것”이란 말이 나왔다.
황당하고 전형적인 견강부회다. 임 후보자 부부를 퀴리 부부에 빗대 감싸겠다는 인식이 어처구니없다. 퀴리 부부가 저 멀리 프랑스의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우리가 관찰했다’ ‘우리가 발견했다’…. 부부의 필적이 뒤섞인 퀴리 부부의 연구 노트에는 유독 ‘우리’라는 표현이 많다. 그 퀴리 부부를 위해서도 ‘논문 내조’인지 ‘부인 찬스’인지 의혹은 꼭 밝혀져야겠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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