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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6일 미국 뉴올리언스. 근 100년의 미국프로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완도 섬마을 출신 ‘코리안 탱크’, 32세 청년 최경주였다. 영어 한마디 모른 채 ‘도전’을 외치며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데뷔 후 3년여 만에, 74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기어이 우승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정규대회 출전권 경쟁 대회를 두 차례나 치르는 고생 끝에 얻은 결실이다. 경기 외적인 스트레스도 많았다. 당시 캐디들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 그를 “돌대가리”라고 놀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첫 우승 직후 최경주는 미국 언론으로부터 “침착하고 조용하며 집중력을 보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우승 인터뷰에서 “이젠 우승을 해봤으니 또 다른 세상에 뛰어든 셈”이라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는 두 배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찬호·박세리의 성과에 필적하거나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첫 우승을 이룬 최경주는 이후에도 그의 말대로 앞만 보고 달려갔다. 2011년까지 우승을 차곡차곡 보태 통산 8승을 쌓았고 5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현역 선수로 뛰며 골프계의 개척자이자 전설로 남아 있다.
그 후 19년 지난 2021년 5월17일 미국 텍사스에서 30세 이경훈이 미국프로골프 투어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최경주 이후 8번째 한국인 우승자다. 이경훈의 첫 우승 장면은 최경주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최강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무대에 도전했고, 험난한 2부 투어에서 3년을 버티며 실력을 다졌다. 2018년 데뷔 후 3년 걸려 80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했다. 79전 80기다. 악천후로 경기가 2시간30분 동안 중단되는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밀어붙인 뚝심도 최경주와 닮았다. 이경훈은 “인내심을 가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틀 전 컷탈락한 최경주는 마지막 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경훈이 우승을 확정하자 다가가서 “자랑스럽다”고 축하해줬다. 이경훈은 “큰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다. 앞서 새 길을 연 선배의 마음이 20년 세월과 나이를 넘어 후배에게 통한 것 같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희망의 문을 계속 두드릴 것.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주문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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