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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3일)은 처서(處暑)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다. 찬바람이 불면서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깊어진다는 얘기다. 아직 한낮의 볕이 따갑고 나뭇잎들은 여전히 짙푸르지만 계절은 분명 가을이다. 다만 오늘이 처서여서 가을이 아니라 오늘이 음력으로 7월16일이기 때문에 가을이다.
많은 사람이 ‘입춘’이나 ‘입추’ 같은 24절기로 계절을 나누는데, 이는 엇비슷하게 맞기는 하지만 우리 고유의 계절 구분법은 아니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이고, 우리의 전통인 음력이 아니라 태양의 운동과 일치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음력 1~3월을 봄, 4~6월을 여름, 7~9월을 가을, 10~12월을 겨울로 봤다. 즉 우리의 봄은 ‘입춘’이 아니라 설날인 음력 1월1일에 시작된다. 중국에서도 매년 음력 1월1일을 중심으로 춘절(春節)을 보낸다.
음력으로 계절을 나눴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추석’이다. 추석은 다른 말로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가을의 중간을 뜻한다. 추석의 또 다른 말 ‘한가위’도 “한가운데”를 의미한다. 음력 7·8·9월이 가을이므로 음력 8월15일인 추석이 곧 ‘가을의 한가운데’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음력을 쓰면서 24절기를 함께 사용한 것은 농사 때문이었다. 농사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달의 움직임만으로는 그 변화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해 음력에 태양의 운동을 표시한 것이 24절기다.
한편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계절의 변화를 잘 아는 것’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철들다’다. 계절(季節)을 뜻하는 우리 고유어가 ‘철’이고,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은 ‘철부지(-不知)’다. 또 ‘철’을 속되게 ‘철딱지’ ‘철딱서니’ ‘철따구니’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흔히 “이런 철딱서니(철따구니)를 봤나”라고 하는 말은 이상한 표현이다. “이런 철딱서니(철따구니) 없는 사람(행동)을 봤나”라고 해야 한다.
엄민용 기자
오피니언 - 경향신문
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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