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술이나 음식을 찐하게 사면 안 된다. ‘찐하다’는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찐하다’를 “무엇이 보통보다 세거나 강하다”를 뜻하는 ‘진하다’를 세게 소리 낸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찐하다’ 역시 바른말이 아니다. “크게 한턱내다”, 즉 “아주 넉넉하다”를 뜻하는 말로는 ‘건하다’가 적당하다. “친구와 술 한잔 건하게 마셨다” 따위처럼 말이다. ‘건하다’는 “아주 넉넉하다”를 뜻할 뿐 아니라 “술 따위에 어지간히 취한 상태에 있다”를 의미하는 ‘거나하다’의 준말이기도 하다. 송년회 등 술자리가 잦은 이맘때 쓰일 말이다.
“오늘 내가 거하게 산다” 따위에서 보듯이 ‘거하다’도 술이나 음식과 관련해 자주 쓰인다. 그러나 순우리말인 ‘거하다’는 “산 따위가 크고 웅장하다” “나무나 풀 따위가 우거지다” “지형이 깊어 으슥하다” 등의 뜻을 지닌 말로, 술이나 음식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다. 일부 국어사전이 ‘거하다’의 뜻으로 “(주로 ‘거하게’의 꼴로 쓰여) 수나 양이 많고 풍부하다”를 덧붙여 놓기도 했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직 그런 뜻풀이가 없다.
어떤 값을 치르는 의미로 ‘쏘다’를 쓰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한턱 쏘다’의 ‘쏘다’ 역시 입말이다. 우리말 ‘쏘다’에는 돈을 낸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한턱 쏘다’ 같은 표현이 널리 퍼진 이유로는 “셈을 치르다”를 뜻할 때도 쓰는 영어 ‘shot’의 대표적 의미인 ‘쏘다’를 아무 생각 없이 끌어다 쓴 탓이라는 주장이 있다. 아무튼 ‘한턱 쏘다’는 ‘한턱 쓰다’가 바른말이다. 다만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쏘다’의 의미로 “여럿이 함께 먹은 음식 따위의 값을 치르다”라는 뜻도 다루고 있다. 앞으로 ‘한턱 쏘다’가 바른 표현이 될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다.
엄민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