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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대표하는 열매 중에 ‘도토리’와 ‘상수리’가 있다. 둘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다르고, 생김새도 확연히 구분된다. 모양이 좀 길쭉한 도토리는 열매를 싸고 있는 받침(까정이)에 털이 없다. 반면 상수리는 깍정이에 털이 있고, 모양이 도토리보다 둥글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서, 상수리보다 좀 더 익숙한 도토리가 상수리의 의미까지 갖게 됐다. 즉 상수리는 상수리나무의 열매만 가리키지만, 도토리는 상수리를 포함해 참나뭇과 나무의 모든 열매를 뜻한다.
‘진짜’ 도토리의 깍정이 겉면은 도톨도톨하다. 여기서 도토리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옛 문헌에 도토리를 ‘저의율(猪矣栗)’로 적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도토리는 ‘돼지의 밤’, 즉 돼지의 먹이를 뜻하는 말이다. ‘猪’는 ‘돼지 저’이고, ‘栗’은 ‘밤 률(율)’이다. 그리고 돼지의 고어가 ‘돝’이다. 이렇듯 도토리의 어원은 그 근거가 명확하다.
반면 상수리의 어원은 분명치 않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란길에서 도토리묵을 맛있게 먹은 후 수라상에 자주 오르게 되면서 얻은 이름’이라는 속설이 있지만, 이는 그냥 재미로만 알고 넘어갈 민간 유래담이다.
국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상수리’를 한자로 ‘상실(橡實)’이라 하는데, 이 ‘상실’이 어떤 음운변화를 거쳐 ‘상수리’가 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다만 그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모든 말은 분명 어원이 있겠지만 문자로 적힌 것이 많지 않아 음운변화를 모두 알 수는 없다. ‘상수리’도 그런 말이다.
도토리와 관련된 표현에 ‘개밥에 도토리’가 있다. “개는 도토리를 먹지 않아 밥 속에 있어도 그냥 남긴다”는 뜻에서, 따돌림을 받아서 여럿의 축에 끼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개밥에 들어 있는 도토리’를 줄인 말이 ‘개밥에 도토리’다.
이런 이치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거나 좋은 것에 있는 사소한 흠”을 의미하는 ‘옥에도 티가 있다’를 줄이면 ‘옥에 티’가 된다. ‘옥의 티’가 아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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